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워녕 May 24. 2021

무슨 일이 있어도 친절하려면


  옆집 추어탕집 사장님은 할머니 사장님이시다.


  연세가 70이 넘으셨다. 사장님은 50대의 따님과 함께 일을 하시는데, 아침 7시에 출근, 밤 9시 퇴근하신다. 나는 두 분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두 분은 늘 서 있고, 계속 움직이고 계신다.

 

  아침에는 커다란 가마솥 3개에 미꾸라지를 끓인다. 가마솥이 얼마나 큰지 내가 통째로 들어가 누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큰 가마솥에 ( 같은) 국자를 넣고 계속 휘젓는다. 추어탕이 걸쭉해지면 걸쭉해질수록 국자를 휘젓는 데는 더 많은 힘이 든다.

  가마솥 하나가 비워지면 이제 그 가마솥을 닦아야 한다. 크고 무거운 가마솥. 그걸 대체 매일 어떻게 들어 옮기고 닦는지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추어탕은 뚝배기에 담겨서 나간다. 심지어 밥은 공깃밥이 아닌 돌솥밥이다. 뚝배기도 무겁고 뜨거운데 돌솥밥도 무겁고 뜨겁다. 추어탕과 돌솥밥과 여러 반찬들을 손님 상에 차리기까지의 모든 일을 70대와 50대의 두 분이 다 하신다. 두 분의 손목에는 파스가 떠나질 않는다.


  추어탕집은 일주일에 7일 영업한다.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연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르실 때가 많다. 그저 아침이 되면 가마솥에 추어탕을 끓이고 밤이 되면 가마솥을 닦는다.


  "좀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고 걱정했지만, "우린 쉬는 날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사장님 앞에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아니,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러시나'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안일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달 월세를 낸다. 관리비도 낸다. 구체적인 액수를 여기에 쓸 수는 없지만 아무튼 한 달에 꼬박꼬박 내야 하는 돈들이 있다. 재료비와 인건비를 제외하더라도, 월세와 관리비만으로도 꽤 많은 돈이 고정적으로 흘러나간다. 한 달이 끝나갈 때마다 딱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또 월세를 내야 하는구나.'


  계산하기 쉽게, 월세가 3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한 달을 30일로 계산했을 때 하루치의 월세는 10만 원이다. 관리비가 60만 원이라면 하루치의 관리비는 2만 원이다. 재료비와 인건비는 +α 가 된다. 그러니까, 하루치의 고정 지출은 '12만 원+α'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에 벌어야 하는 최소 금액이 대충 산정된다. 아무리 못해도 '12만 원+α'를 벌어야 하는 것이다.  


  '에이, 하루에 십몇만 원은 금방 벌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버는 돈이 순수하게 수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세금 떼고, 카드수수료 떼고, 포장용기값도 떼야 한다. 그날그날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드는 돈들도 다 제외해야 한다. 그러니까 벌어야 하는 돈은 십몇만 원이 아니라 몇십만 원이다. 여기에 사장님의 인건비가 충분히 나오려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벌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무려 코로나 시국.


  이렇게 계산을 하다 보면 여러모로 숨이 턱 막힌다.


  이 계산을 휴무일에 적용하면 기분이 이상야릇해진다. 휴무일은 아무 소득활동을 하지 않는 날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하루치의 고정지출은 꾸준히 나간다. 그걸 벌지 않고 하루를 통째로 쉰다는 건, 다시 말한다면, 돈을 지불하고 쉬는 거나 다름없다. 쉬는 값이다.  


  그동안 '쉬는 값'이라고 하면, 쉬는 날 어디 여행 가는데 드는 비용이라고 생각했다. 여행 가는데 드는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등. 이렇게 저렇게 해서 30만 원을 넘기지 않았다면 알뜰한 여행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자영업자가 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하루를 쉬는 데는 그만큼의 값이 드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흘러나가는 돈, 그러니까 하루치의 월세와 관리비 등 고정지출을 지불하면서 쉬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루를 쉬기 위해서는 십몇만 원, 아니 몇십만 원이 드는 것이었다. 쉬는 값이었다.





  우리 가게는 일주일에 6일 영업한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혼자 일하는 나는 아무래도 쉬는 날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하루를 휴무로 잡았다.


  가게를 오픈하고 처음 한두 달 동안은 뭐가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쉬는 날이 되면 나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그래, 역시 사람은 쉬는 날이 있어야 해' 하며 나는 하루 종일 침대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요즘은 조금 다르다. 쉬는 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문득 시계를 보고 시곗바늘이 낮 12시를 가리키면 가슴이 철렁한다. 오늘치 지출을 벌써 반이나 한 것이다. '쉬는 값'이 20만 원이라면, 쉬는데 벌써 10만 원을 쓴 것이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돈이 흘러나가는 걸로 보인다. 돈이 지출되고 있구나.

  주 1일, 그렇게 한 달에 4일을 쉬다 보니, 그러니까, 하루에 쉬는 값이 20만 원이라면 한 달이면 80만 원이나 내고 쉬는 셈이다. 3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200잔 팔아도 벌 수 없는 80만 원.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벌떡 일어나 앉게 된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그냥 있으면 안 되는 것 같은데.


  휴무일을 없앨까, 아무리 손님이 없는 날이라도 가게 문 열고 나가 몇만 원이라도 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가게도 연중무휴로 영업을 할 때가 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정해놓고 다니는 치과에서 연락이 왔다. 예약한 날짜가 다가오니, 시간 맞춰 내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연락을 받고 적잖이 당황했다. 화요일 오후 3시였다. 화요일 오후 3시라니! 지금 내가 어떻게 화요일 오후 3시에 가게를 비우고 바깥에 나가 다른 일을 볼 수 있을까. 심지어 우리 알바생은 오후 3시 반이면 퇴근해야 하는데!

  당장 치과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셨어요! 다름이 아니고, 제가 그 시간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서요!" 했더니 "그러면 언제로 다시 예약 잡아드릴까요?" 하 물어보셨다. 나는 또 당황했다. 우물우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마터면 이렇게 말할 뻔했다. '그러게요. 제가 언제로 다시 예약을 잡아야 할까요. 제가 언제쯤 마음 편히 가게를 비우고 치과에 가서 진료를 볼 수 있을까요.' 나는 간신히 "제가 요즘 새로 일을 시작한 게 있어서요... 스케줄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니 앉았다. 옆에서는 제빙기가 달그락달그락 얼음 뱉어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손님이 들어왔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하셨다. 나는 원두를 갈고 커피를 뽑고 컵에 컵홀더를 끼우고 빨대를 꽂으면서 말했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내가 어떻게 이 가게 밖으로 나가 마음 편히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아, 나는 아파서도 안되는구나.


  아프면 큰일이었다. 가게를 비워놓고 병원에 가야 한다니! 심하게 아파서 꼼짝 못 하고 있는 상황은 더욱 끔찍했다. 가게 문을 열러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다른 누구에게 대신 가게 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날 하루는 가게가 캄캄한 채 계속 문이 닫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그게 하루가 아니라면! 내가 며칠 입원이라도 해야 한다면! 그렇게 여러 날동안 가게 문을 열지 못한다면!


  아, 나는 아파서도 안되는구나.




  "사장님의 시간은 돈이랍니다"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직접 시럽을 만들고, 직접 과일청을 담그는 모든 일들은 사장님의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다. 직접 만들면 원가는 절감할 수 있지만, 그만큼 사장님의 귀한 시간은 없어진다. 사장님은 직접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시간을 쓰지만, 그건 단순히 시간을 쓰는 개념이 아니다. 사장님의 시간은 돈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쉬면 '쉬는 값'이 들고, 아프면 '아픈 값'이 든다. 여행경비, 병원비가 아니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속도는 사장님의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와 같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모습은 돈이 흘러나가는 모습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쉬는 날 침대에 누워 시계를 보면서 '돈이 나가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던 건, 내가 사장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제 정말 사장이 되었나 보다.




  

  

  생전 처음 자영업자로 살아보며, 처음 겪는 일들과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나로서는 "우와,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존의 사장님들이 내 글을 읽고 '공감'해주시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겨우 몇 달 동안 겪은 이 새로운 세계를 그분들은 이미 질리도록 살아온 분들일 텐데, 내 글을 읽고 위로받았다고 해주시고 힘이 난다고 해주셨다. 덕분에 힘내라는 말을 분에 넘치게 듣고 있다.


  "힘내세요!" "힘내십시오!" "힘내자고요, 우리!" "힘내 봅시다!" "힘냅시다!" "화이팅하십시오!" "화이팅!" "화이팅해요!" "응원합니다!" "응원하게 되네요!" "응원하겠습니다!" "응원할게요!" "응원하고 있습니다!"


  힘내라는 말이 이렇게나 많이 있구나. 


  그중 한 사장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결국은 친절이 최고인 듯합니다. 건강해야 친절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하루 이틀 일해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님을 안다. 이 사장님의 시곗바늘은 얼마나 엄청난 시간을 돌았을까. 시곗바늘이 그렇게 계속 도는 동안 사장님은 또 얼마나 많은 일을 겪으셨을까. 힘들었다가 즐거웠다가 지쳤다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하는 날들을 얼마나 많이 지나오셨을까. 수많은 상황과 생각, 다짐, 결단, 의지가 들어있는 이 말 앞에 나는 엉엉 울었다. "건강해야 친절할 수 있습니다."





  카페를 오픈한 이후, 이렇다 할 운동을 통 못하고 있다. 지난 1~2년 동안 조금씩이라도 매일 운동하며 내 몸에 '운동'이란 것을 습관으로 들여놓았는데, 그 시간과 노력이 무색할 만큼 운동을 못하고 있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까지 운동할 시간이 없을 수가 있을까. 날이면 날마다 생각한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운동하고 싶은데.


  딱 한 번, 큰 마음먹고 아침 5시에 일어나 1시간 동안 바짝 운동하고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 한 주가 참 길게 느껴졌었다. 그 이후로는 아침 운동에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카페에서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쇼케이스 옆에 덤벨을 가져다 놓고 틈틈이 힘을 쓴다. 한적한 시간에 알바생에게 "나 잠깐 몸 좀 풀고 올게"하고 창고 구석에 들어가 옆구리를 비틀고 다리를 찢으며 스트레칭을 한다. 그런 나를 보고 알바생은 '사장님의 은밀한 사생활'이라고 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세 번 한다. 우리 집에서 가게까지는 자전거로 15분 정도가 걸린다. 집에서 가게로 가는 길은 약간 내리막길이지만, 가게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약간 오르막길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자전거 위에서 허벅지가 터져나가는 기분을 느끼며 자전거를 탄다.

 

  딱히 운동하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는 건 아니었다. 자전거 출퇴근을 하기까지 꽤 여러 가지 복잡한 다른 사정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건강해야 친절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은 건 우연이라기엔, 너무 운명 같았다. 마치 "무슨 일이 있어도 친절하세요!", "어떻게든, 반드시 건강하세요!"하고 내 주위의 공기가 나를 밀어붙이는 것 같았다. 사장님이지 않냐고. 사장님은 그래야 한다고.


  나는 쉬는 값을 지불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를 쉰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다가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땐가!' 하고 벌떡 일어나는 일이 많은 요즘이지만, 아무튼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가게문을 닫는다. 한동안 "어제 왔었는데 문 닫혀 있더라고요!" 하며 서운해하는 손님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손님들도 휴무를 당연하게 생각해주신다. "푹 쉬시고 다음 주에 뵈어요! 커피 마시러 또 올게요!"라고 해주시는 손님들 때문에라도 나는 아파서는 안된다. '쉬는 값'은 내도 '아픈 값'은 내고 싶지 않다. 나는 사장이므로 아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왕 '쉬는 값'을 내고 있으니, 푹 쉰다. 그리고 다음날 좋은 컨디션으로 출근을 하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만난다. "건강해야 친절할 수 있습니다"는 문장을 마음에 품고 가게 문을 연다.


  오늘도 가게 문을 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