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멘트] 경수진의 시간
잠을 안자도 좋으니깐 남은 20대 동안 밝고, 사랑스럽고, 풋풋한 모습을 카메라에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 30대 중후반이 되면 풋풋함보다는 여성미와 느껴지면 좋겠고, 40대 후반엔 깊이가 있는 악역을 해봤으면 좋겠다.
(배우 경수진, 2014년 10월 인터뷰 중)
어릴 적 상상했던 나의 30대가 구체적으로 떠오르진 않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지금의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학창 시절 '30대'라는 나이는 손이 닿지 않을 만큼의 엄청난 어른이었(다고 생각했)기에 이미 인생이 어느 정도 완성된 시기일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30대가 곧(정말 곧!) 끝나가는 지금에 와서 나의 30대를 하나하나 돌이켜보니 여전히 이루지 못한 인생의 숙제가 산재하다. 나름 부지런히 살아온 것 같은데, 이뤄놓은 것들을 보며 그저 막막하다. 무서워서 입 밖에 쉬이 내놓지 않지만,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나 앞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다. 참 오래, 한결같다.
어렵다. 획일화된 범주에서 일단 대체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10대의 학창 시절과는 확 다르다. 20대는 성인이었음에도 대학, 군대, 취업 등으로 분주하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끝나버렸다. 30대는 가이드가 정해진 게 없고, 사소한 결정도, 그에 따른 책임도 모두 내가 짊어져야 한다. 덤덤하려 해도 매 순간이 무섭고, 소심하게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결과는 예측을 벗어나는 경우가 잦다.
그럼에도 난 나의 40대를 그려본다. 이번에도 몽땅 다 빗나가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빗나간 삶도 나름 의미가 있고, 미리 그려본 탓에 예측 못한 일들이 더 빛날 수도 있다. 고용된 회사의 부속물이 아닌, 주체적인 자아.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즐겁고 행복하되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다시는 오지 않을 현재를, 곁에 있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그런 40대이길.
딱 6년 전 인터뷰로 만났던 20대의 경수진 배우는 활기가 가득했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경수진은 찐이다!) 밝고 사랑스럽고 풋풋했던 그는, 잠을 잠시 밀어두고서라도 조금 더 당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두고 싶어 했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그가 그때 생각했던 변신에 성공했다고 느끼고 있을까. 그러다 40대가 되면 섬뜩한 악역으로 나타날까.
옳고 그른 건 없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내가 시간차를 두고 주고받는 대화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