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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Mar 28. 2023

벚꽃놀이가 매년 새로운 이유

아이와 함께 벚꽃놀이를 다니고부터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거기 잠깐 서봐. 사진 찍어줄게. 자, 하나 둘 셋!


올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여의도 벚꽃길.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포토스폿이라도 발견할 때면, 오늘은 기필코 인생샷을 건지리라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 카메라 버튼을 연신 눌러댄다. 사진 찍기에 집중하기에는 인파도 만만치 않고, 챙겨 온 짐도 상당하며 아이들을 챙기기에 마음마저 바쁘지만 매년 같은 곳에 활짝 피는 벚꽃을 볼 때마다 새롭고 좋은 걸 어쩌랴. 게다가 잔인하리만큼(?) 개화시기가 짧기에 타이밍을 맞춰 나들이 오는 것도 일종의 준비와 전략이 필요하더라.


혹시 내가 벚꽃 마니아라도 되나 예상했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단지 그 벚꽃길을 해마다 함께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감사하고 추억이 된다고나 할까. 더 정확히 말해 이 순간이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가장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기 때문이리라.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벚꽃엔딩이란 노래를 들어봤는지? 10여 년 전 발표된 메가히트곡으로 매년 이맘때가 되면 각종 음원차트에 재진입하는 실로 놀라운 곡이다. 이 노래가 처음 나온 그 시절, 지금의 남편과 연애 중이었던 나는 아껴왔던 소중한 주말데이트를 여의도 벚꽃놀이로 대신했다. 그 당시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벚꽃엔딩'은 우리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추억의 노래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 장범준 <벚꽃엔딩> 가사 중 -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둘이 걸었던 그곳은, 결혼 후에도 매년 걷는 그 길이 되었고 우리 부부의 추억이 길을 따라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지난 후, 지금도 나는 해마다 이맘때면 그 길을 벚꽃비 맞으며 걷는다. 이제는 둘이 아닌 넷이서.



매년 같은 길이 지겹지 않으냐 물으신다면


강산도 변한다는 지난 10년 동안 나는 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지금껏 매년 봄이 되면 온 가족이 여의도 벚꽃길을 걷는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유모차를 끌고 보온병과 분유, 그리고 기저귀까지 잔뜩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혹시 꽃샘추위와 미세먼지에 아이가 감기라도 걸릴세라 얇은 이불로 한번 더 아이를 덮어주며 걷기도 했다. 벚꽃하나 보자고 어린아이와 이렇게까지 외출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유모차까지 끄느라 통행에 방해라도 될까 조심스럽기도 했으나 우리 가족의 추억 한 겹 쌓는 일에 꾸준하기로 했다. 그나마 집이 그렇게 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씩 아이들은 커갔고 어느새 이제는 유모차가 필요 없는 나이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짐가방도 줄었고 온 가족이 불판 있는 고깃집에 가서 외식을 할 수 있는 호사(?)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미취학 아이와의 외식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뜨겁거나 매운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는 아이를 최대한 데려가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와의 외식 고군분투기는 '그 좋아하던 돈가스가 질릴 것 같은 이유'를 참고하시길) 그것뿐이랴. 엄마인 나도 다시 하이힐을 신고 옷에 어울리는 예쁜 가방을 드는 등의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뿌듯한 순간을 만들어 준 아이들


누군가 내게 가장 뿌듯한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언컨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은 일'이라고 할 것이다. 결혼 전, 커리어와 성취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나였기에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나조차도 놀랍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변할 만큼 엄마가 되고 나서 보는 세상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고나 할까. 요리조차 서툴렀던 내가 가족을 위해 제철 음식을 찾아 조리법을 연구하고 아이의 시선에서 주변환경을 세심히 돌아보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한 환경을 제공할까 엄마로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아이들을 위한 각종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로 놀라운 변화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바쁘고 힘들었던 삶에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는 근거와 필요를 갖게 되었다는 것.


이 모든 변화는 감히 엄마가 된 후 받은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를 낳고 기르지 않았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세상. 물론 육아는 힘들고 답이 없다고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도 쉽게 누리지 못할 숭고한 뿌듯함마저 존재한다. 특히나 더딘 것 같으나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계속 자라나는 것을 볼 때, 뿌듯함을 넘어 일종의 희열마저 느껴진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매년 벚꽃길을 걷는다. 올해는 여의도 벚꽃길을 걷는 나와 아이들이 얼마큼 성장하고 어떤 추억 한 페이지를 채우게 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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