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당장 세상에 나와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무튼 37주~40주 사이에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여러모로 신경 쓰라는 것이다.
지키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게 들렸던 적이 있던가.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나는 미션이 생기면 거기에 더욱 몰두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미션은 몰두할 일이 없어 난감했다. 무리하지 말라는데 어느정도 활동이 무리한 건지 잘 모르겠고. 적당히 운동하고 골고루 먹으라는데, 그건 또 모호하고.... 무엇보다 그 모든 걸 나름대로 잘 해내도 비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임신 기간을 거치면서 느낀 건, 안정기란 없다는 점이다. 임신 초기에는 수정란이 잘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 조심하고, 중기에는 몸에 탈 나면 안 되니까 또 조심하고. 그러니까 아이를 지키지 않은 적 없는 시간들인데, 새삼스럽게 또 잘 지키라고 하니 마음만 비장해졌다.
아이를 지킨다는 건, 어쩌면 이 생명체가 생긴 후부터 그냥 계속 진행되는 미션 같은 게 아닐까. 산전 마사지를 받으러 어느 가게에 갔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손과 발이 너무 부어 몸이 아프던 때였다. 젊고 친절한 사장님이 직접 프로그램과 가격 상담을 해주곤 조심조심 내 몸을 만져주었다. 산전, 산후 몸조리와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가 선생님도 출산을 한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젊어보이셔서 그렇다며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그는 웃으며 당연히 했다고, 두 명의 자녀가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 남자들이 자신만의 군대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면, 여자들에게는 출산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사장님은 첫째 보물을 얻기 전까지 겪었던 유산 과정들, 아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면역력을 떨어뜨려야 했던 시간들, 아프고 고단했던 순간들을 말했다. 간혹 어떤 몸은 아기를 외부 침입자로 여겨서 면역력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계속 공격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 사장님은 자기 대신 아이를 지키는 걸 선택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 가혹해서 두 번째는 없겠다고 생각했단다. 다시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했을 때 고민이 깊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면 둘째 임신 때는 괜찮으셨나요?”
“임신 기간 중엔 그래도 괜찮더라고요. 그런데 이후에 힘든 순간들이 또 있었죠.”
이것은 운명이다. 운명이니, 이번 임신은 인위적으로 내 면역력을 떨어뜨리면서까지 무리하지 말자. 그게 당시 그의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별 이벤트 없는 임신기간을 지났는데 둘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부터 각종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신체 일부가 조금 불편했기 때문이다. 좌절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그는 아이를 위해 좋은 재활 프로그램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아이의 불편함이 지금은 거의 티도 안 날 정도가 됐단다. 무척 쾌활한 아이예요- 사장님은 자신의 두 번째 보물에 대해 이렇게 소개를 마쳤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들을 품었으니 고생이 참 많으셨다고, 그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고생이야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만난 건 참 잘한 일이라고. 덕분에 너무나 행복하다며 잠시 미소를 보였다. 아이를 품은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아이들을 지키고 있는 여성을, 그때 만난 것 같았다.
산전 마사지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사장님이 내게 물었다. 출산일이 언제냐고 했다. 10월 말 즈음이라고 하니 좋은 가을날이라며, 노래 한 곡을 추천해주었다. ‘김동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였다. 자신이 둘째 아이를 품었을 때 태교 음악으로 많이 들었다며, 지금도 간혹 울컥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음악을 틀었다.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아직은 모르겠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래도 어렴풋하게, 아이를 잘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