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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Aug 29. 2022

만삭 사진을 찍었다

고대하고 기대하는 나날들

  최근에 만삭 사진을 찍었다. 배만 동그랗게 나온 몸이 신기해서다. D라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누가 봐도 배가 가장 도드라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사실 더 신기한 건 마음가짐의 변화였다. 평생 날씬한 몸을 갈망해왔는데, 지금처럼 군살도 있는 내 몸이 싫지 않았다. 물론 몸이 더 붓는다거나, 이상한 피부 트러블도 생기는 등 각종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래도 견딜 만했다. 안에서 가끔 꿈틀대는 무언가가 종종 벅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몸과 마음을 남기고 싶었다.     



홀로 사진을 남기는 것보단 가족과 함께 하는 게 의미 있을 것 같아 남편을 섭외했다. 그는 참고로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을 예쁘게 찍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에 올리는 것을 거부한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자랑하는 것도, 젊은 날의 멋진 모습을 꺼내보며 위로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그런 그를 설득하려고 고민을 많이 했다. 집에서, 핸드폰 카메라를 세워두고,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사진 찍자고 했다. 결과물은 혼자 몰래 보겠다고도 했다. 그렇게 결국 집에서 가장 넓은 흰 벽면과 안방 침대를 배경 삼아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매일 보는 사람이지만 막상 껴안고 웃으려니 어색했다. 그래도 익숙한 환경에 있으니 금방 분위기가 풀렸다. 남편은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를 살렸다. 우리는 안아보기도 하고, 서로 마주 보기도 하고, 각자의 배도 드러내 보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결과물을 보니 표정이 편안해 보여 흐뭇했다. 우리에게 이런 얼굴도 있었던가, 발견하는 기쁨이 컸다.      




 임신 기간으로 따지자면 벌써 8개월 째지만 초기와 중기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된 2월부터 일기를 쓰고 있는데 그걸 보고 알게 됐다. 산부인과 초음파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은 날이 변화의 기점이다. 이 전에는 입덧이 심해짐, 몸살가 있음- 뭐 이런 식으로 제목을 쓰고 내용도 몸 상태를 기록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심장소리를 듣고 나면서 내 모든 일기가 작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바뀌었다. 아기야, 오늘은 엄마가 뭘 했어. 이런 식이다. 내 몸 상태에만 가 있던 시선이 그 안의 누군가에게로 옮겨진 걸 느꼈다. 그런 글들을 보고 있자면 내 마음가짐이 어떻게 엄마로 변하고 있는지,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게 얼마나 마음을 쏟을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사랑. 이런 모호하고 큰 단어를 갖다 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감정의 변화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그랬다. 벌써부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존재를 사랑하는가 보다고 걱정하게 된다.     



아래부터 오래된 순. 2월 20일과 23일은 개인적인 일기에 가깝지만 3월 14일 이후부터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글을 쓰게 된다.



 맞다. 나는 걱정이 된다. 사랑하는 게 무섭다. 사랑이 뭔가. 아무튼 줄 수 있는 건 다 갖다 주는 것 아닌가. 그러다 내가 보낸 마음만큼 상대에게서 돌아오지 않으면 또 얼마나 실망스러운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사랑하고 있는 인간은 약하다. 애정을 쏟는 상대에게 한없이 조심스럽고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아주 친밀한 관계를 제외하곤 되도록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을 정도로만 애정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런데 다시 그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물론 결과를 안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저 기다리다가 아이가 나오면 그 결과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태반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생명체. 이 아이가 태어나면 꼼짝없이 나는 그 꼭 쥔 손에 온 마음을 다 맡겨버리겠지. 그 순간을 걱정하면서도 나는 기대하고, 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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