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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Aug 11. 2022

몸 둘 바 모르겠는 여름

코로나에 또 걸렸다.

 코로나에 걸렸다. 목이 따끔거렸고 이내 잠겼다. 이미 통증이 있기 며칠 전부터 가족이 확진된 상태였으므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근처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로 최종 확진 판정을 받고 털레털레 집에 왔다. 곧 보건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에 처음 걸리신 건가요?

-아니요. 이전에도 걸렸었는데 언제인지는…….


기억을 더듬고 있자니 수화기 너머에서 먼저 말했다. 12월이네요.


 앞으로 어떤 통증을 겪게 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아서 스스로의 기억력을 탓하고 있던 참이었다. 8개월이면 잊을 만도 하지. 그런데 키랑 몸무게도 원래 말했던가. 전보다 무거워진 스스로가 쑥스러웠다. 임신해서 몸무게가 늘었다고 덧붙일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대화가 끝이 났다. 그럼 자택격리 잘하세요. 이전보다 훨씬 간단해진 조치였다. 격리는 개인 양심에 맡기고 치료도 각자에게 맡기는 것 같았다. 몇 시간 뒤에 문자 메시지로 ‘격리를 어기면 과태료’라든지, ‘비대면 진료 안내’ 같은 게 왔다. 내용이 머릿속까지 못 오고, 눈앞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목에서 시작된 따끔거림은 이내 코와 눈, 폐로 퍼졌다. 고통은 에어컨을 틀면 더 심했다. 독감 같은 것이니 그럴 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에어컨을 끌 수도 없었다. 이 한여름에 에어컨 없이 지내는 건 옷과 이불, 공기 같이 피부에 닿는 모든 걸 불쾌하게 자각하는 것과 같았다. 눕든, 걷든, 뒹굴든- 주변의 모든 것이 피부로 착 달라붙었다. 


 그 모든 걸 뿌리치려 어정쩡하게 집 안을 걸었다. 미열과 근육통, 두통 같은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회사에 보고하고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니 점심이 지나있었다. 도저히 활자를 볼 기분이 안 났다. 자기 전까지 가볍게 볼 수 있는 유튜브 영상이나 영화 같은 걸 봤다.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게임도 새로 깔았다. 평소엔 비생산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해서 자제해왔던 일들이다.


 꼭 보는 것만 그랬던 건 아니다. 이제 모든 선택은 고통을 마비시키기 위한 일이 됐다. 평소라면 임산부로서 절대 먹지 않을 약들도 혹시 모를 부작용과 약효의 이점을 비교해가며 먹었다. 점심과 저녁 메뉴는 입맛이 당기는 걸로 시켜먹었다. 그게 유기농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나중에, 컨디션이 조금 돌아오고 나서야 이 모든 결정을 뱃속의 아이와 함께 감수하고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미안하다. 그런데 나도 일단 덜 아파야지... 배를 쓰다듬자 안에 있는 생명이 톡톡 무어라 답을 했다. 격리 중인 와중에도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게 새삼 반가웠다.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았다는 감각은 소중한 것이다. 격리되고 나니 소중한 게 더 크게 느껴졌다. 소식을 듣고 안부를 묻는 메시지들이 고마웠다. 특히 엄마랑 가장 많이 연락을 했다.


- 야, 너는 홑몸도 아닌데 그걸 또 걸렸어. 지금은 괜찮아? 그래도 너네는 유급 휴가니? 우리는 무급으로 쉬어야 해서 저기서 기침을 막 하는데도 출근하고 그런다.


 엄마 말을 들으니까 이번엔 내가 걱정이 됐다.


- 무급 휴가가 웬 말이야. 엄마도 조심하세요.

- 그래서 내가 너희 아빠한테도 조심하라고, 나는 걸리면 월급 못 받는다고 단단히 말해두었어.


 코로나 걸리면 직장인만 제일 좋다더니. 직장인 중에서도 나 같은 공공기관 직원과 엄마 같은 일반 사업체 직원은 또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엄마가 불안감을 견디는 방식은 자영업자 아빠한테 방역 단속을 하는 것이다. 역시나 병에 걸리면 경제적 타격을 입는 사람이다.


- 서울은 비가 많이 온다는데 엄마는 출퇴근하기 괜찮아요?

- 응, 이쪽은 괜찮아. 그래도.



 질병 이야기가 암울해져 우리는 날씨 이야기를 했다. 평소라면 가벼운 소잰데, 그마저도 유쾌하진 않았다. 피해 입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지하 방에 갇혀 있다 사망한 가족의 이야기가 뉴스로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 죽음에 더 이상 말을 붙이기도 어렵고, 그냥 자꾸 안타까웠다. 결국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서로 건강 챙기라는, 가볍고 진심 어린 말을 뒤로한 채.


 코로나나 폭우나, 큰 위기는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더 위협적일 수밖에 없는 걸까. 경제적 위협이 더 무서워서 질병에 노출되고, 물에 휩쓸릴 위험을 감수하며 반지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쯤 되니 통증에만 오롯이 신경을 쓰며, 그저 몸에 덜 이로운 선택을 하고 있는 내가 호화로이 느껴다. 몸이 아프고 무거우니 머리도 자꾸만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습기를 견뎌내거나 호흡기의 답답함을 견뎌내는 것도 버거운데 말이다.


이래저래 몸 둘 바 모르겠는 여름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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