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의 세계 Oct 21. 2022

딩크 파트너와 임신을 결심하다 (1)

타협과 희생 사이

 글을 쓰는 지금은 임신 10개월 차, 임신의 여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다.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고 그동안의 과정들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그 시작의 기록이 없다는 걸 알았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건 꽤 놀라운 일이었다. 파트너가 딩크(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 지향자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며 지난하게 이어져오던 시간들은 그 어떤 임신 과정보다 드라마틱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남겨볼까 한다.


 참, 오해를 줄이기 위해 덧붙이자면 남편은 아이 있는 삶을 결정한 후, 행복한 가족 구성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나 역시도 남편의 행복을 위해 지킬 것들을 약속했다. 우리는 자신의 행복만큼이나 서로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타협과 희생,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며 아직 잘 지내고 있다.




 우리의 임신은 계획적이었다. 출산하기 좋은 시기를 가늠했고 딩크(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의 삶을 꿈꿨던 남편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여기까지 쓰니 딩크 지향자들이 질색하는 표정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싫다는데 왜 자꾸 설득하냐고.


 애초에 연애기간 동안 그가 딩크인 줄 알고 있었다. 아이 자체는 싫지 않다고 했다. 다만 자신의 돈과 시간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쓰고 싶어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어떤 생명체와 그 모든 걸 나눠 쓰라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애써 숨기지도 않았다. “나를 너무 사랑하는데, 내가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연애 초반에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그는 이런 말을 해서 나를 서운케 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각자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지.”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대답은 좀 더 유하게 변했지만 생각이 변하진 않았다.



 나는 아이를 원했다. 아이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되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타격 입을 거란 걸 알아도 그랬다. 그건 내 특성인 것 같기도 했다. 오래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리거나 뒤집으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아이가 없는 삶에 대해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도 들었지만 오랜 생각을 뒤집을 만큼 감명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있어도 행복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잘 지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너무 많았다.



 연애할 때 우리의 차이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사귀면서 서로 다른 부분을 잘 맞춰갔다. 무엇보다 그때 결혼은 먼 이야기였다. 결혼 상대로 서로가 확신이 들면 그때 아이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5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우리 사이는 좋았지만 이제는 결혼이라는,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됐다는 걸 느꼈다. 둘의 생활은 이미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꽤 합쳐져 있었다.


“우리, 이럴 거면 같이 살자.”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난 결혼 전까지는 동거 계획이 없는데.”


“그럼 결혼하자.”


 가벼운 청혼이었다. ‘그래’라는 말을 꾹 눌러 삼키고 그에게 다시 한번, 아이에 대해 물었다. 아무리 서로가 좋아도 가까운 미래에 중요한 타협점이 없다면 헤어져야 했다. 답은 그동안 그가 해온 대로였다. 아이는 없어도 되지 않나. 음, 그럼 우린 끝이군. 그런데, 헤어지는 게 쉽지 않았다. 아이는 중요한 문제였지만 어쨌든 미래였고, 우리는... 지금 행복했다! 결국 몇 번의 다툼과 짧은 단절 끝에 그가 말했다.



  미래에 내가 어떻게 바뀔지 나도 몰라. 반대로 너 역시 그럴 거야.
그러니 일단 같이 살아보면 어때. 미래를 어떻게 다 예측하고 살아?



 우리는 서로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며 아기 문제를 묻어두고 결혼했다. 그리고 왜 아이가 갖고 싶은지(혹은 그렇지 않은지) , 아이가 있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은 어떻게 다를지- 여러 책들을 읽고 사람들의 말도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의견은 모아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있었다. 나는 ‘아이가 있는 삶의 애환’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줄 몰랐고, 남편은 ‘(지금과 다른) 아이가 없는 삶의 기쁨’을 제시하지 못했다.


 중요한 건, 어차피 아이는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생물학적 나이가 있다. 내가 여전히 남편과 헤어질 수 없다면 우리는 아이 없이 살아야 했다. 협상에서는 초조한 측이 늘 불리해진다. 초조한 내가 남편 눈치를 봐가면서 더 열심히 설득했다. 우리에겐 육아휴직 제도가 있고, 그 제도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휴직이 끝나면 맞벌이는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고,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지원도 늘고 있다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생기면 남편의 개인 시간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