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 주인이 되었습니다.
연애하며 땅 보러 다니고 결혼해서 펜션을 지어서 들어왔으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그래선지 결혼 후 7년이 지난 후에야 아기가 찾아왔다. 무던한 편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면에서는 예민한 걸까? 너무 바빠서 아이까지 있으면 무리라고 생각하던 기간에는 생기지 않던 아이가, 한숨 돌리고 이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생겨버렸다. 남편은 동네에서 얻은 장뇌삼 덕분이라고 했지만, 글쎄다.
정작 나는 꿈인지 현실인지 얼떨떨한 상태였지만, 신이 나버린 남편이 소문을 낸 덕분에 손님들까지 모두 아기 소식을 알게 되었다.
홈페이지에는 축하글이 도배가 되었고, 열 달 내내 과일 선물이 들어오고, 여러 번 온 손님들은 물론, 처음 온 손님까지 아기옷과 용품을 사들고 와서 선물을 주었다. 아기가 태어난 후 한참을 아기 물건을 살 일이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 봐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엄청난 입덧과 기쁨이 함께 한 임신기간을 거쳐 아주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노산이라 불안해하는 가족들의 걱정 때문에 꽤 거리가 있는 분당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출산을 하였다.
출산 후 병원 근처의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는데 우리 동네 이장님이 동네에서 오랜만에 태어난 아기라며 00리 이장이라고 쓰여 있는 축하 화분 선물을 산후조리원으로 보내셔서 산모들과 웃었던 기억이 난다.
태어나서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알 수 없는 결핍을 늘 느껴왔던 내가 아이로 인해서 그제야 온전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아이가 커갈수록 내 행복의 크기도 커져갔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 둘이 서울을 간 적이 있었다. 목적지는 잠실에 있던 뽀로로 테마파크(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로, 뽀로로를 사랑하던 아이를 위한 여행이었다.
뽀로로와 크롱을 만나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행복해했던 아이는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한 마디 건네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노부부를 붙잡고 펜션집 아들답게 넉살 좋게 말하였다.
“얘야, 몇 살이니?”
“저는 다섯 살이고 우리 집은 숲에 있어요.”
“그래? 공기 좋은 곳에 살아서 좋겠구나.”
“우리 아빠는 고기 굽고, 엄마는 밥을 만들어요.”
아마도 그 노부부는 우리가 지방 어디서 고깃집을 한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어찌 되었든 아이는 스스로의 답변에 만족해했다. 그러면 된 거지.
아이가 태어난 후 펜션은 달라졌다. 원래도 가족들이 많이 오는 편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확연히 아이 있는 가족 친화형 펜션이 되었었다. 펜션 안팎에 아이를 위한 물건들과 공간이 늘어났다. 덕분에 아기 있는 부모들 사이에도 소문이 났는지 어느 순간 고만고만한 아이 있는 가족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
아이 때문에 변화한 펜션이었지만, 펜션집 아이였기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컸다. 여름이면 하루 종일 수영장이며 놀이방 앞 모래놀이터에서 놀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눈밭에서 썰매 타고 눈 놀이하며 놀았으니, 내가 엄마긴 하지만 참 부러운 팔자라고나 할까.
혹시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펜션을 하고 싶은 젊은 부부가 있다면 젊었을 때 도전하는 것을 추천한다. 힘든 일이긴 하지만, 펜션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의 어린 날의 만족도는 최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 어쨌든 우리 아이는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