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스쿼시] 스쿼시장의 텃세
"아니 저런 사람이 오면 안 되지."
코트 앞에서 점수판을 붙잡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코트 안에서는 우리 센터 회원과 이곳 센터 회원의 경기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우리 센터에 다니던 회원의 '삑사리'가 나오자 심판을 보던 이곳 센터 회원이 대뜸 던진 말이었다.
우리 센터 회원들은 친선경기를 위해 이날 아침부터 김밥이며 음료수며 과자며 바리바리 싸들고 차를 나눠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우리 센터보다 큰 정식 구장에서 쳐본다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음식은 당연히 이곳 회원들과도 나눠먹은 참이었다.
근데 이게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인가. 대회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아니 대회여도 그렇지) 친선 경기에서 잘 못 한다고 해서 오지 말라고 하다니, 참나. 나는 옆에 있던 우리 센터 회원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잘 못하는 사람은 오지 말라는 거야 뭐야. 아니 자기는 뱃속에서부터 스쿼시 배우고 나왔어? 저러면서 느는 거지."
모든 경기가 끝난 뒤 그날 찍은 단체 사진을 보면 내 얼굴엔 '썩소'가 가득하다.
스쿼시장엔 '텃세'가 있다는 말이 있다. 특히 게임반이 있는 경우 기존에 오래된 회원들이 새로 들어온 회원들에게 텃세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센터에는 텃세의 ㅌ자도 없었다. 오히려 주춤대며 게임반을 서성대는 회원들에게 오래된 나이 지긋한 회원들이 '거기에 라켓 세워두고 한번 쳐보라'고 챙겨주곤 했다. (스쿼시 게임은 코트 밖에 라켓을 세워둔 순서대로 들어가 친다.)
"재주씨, 공을 끝까지 봐야지. 지금 고개가 먼저 돌아가잖아. 공을 끝까지 보고 쳐요."
게임을 치고 있거나 옆 코트에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오래된 회원이 난입(?)해 갑자기 1:1 코치를 해줬다. 어떤 이들은 '웬 오지랖이야' 했을지 몰라도 나는 친절한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유심히 치는 모습을 관찰하다 말을 건넬까 말까 또 몇 번 고민하다 결국 잘 치기 바라는 마음에서 건네는 한마디.
그들은 모두 십 년 안팎 스쿼시를 친 중년의 회원들이었다. 햇병아리같은 나와 칠 때면 영 운동하는 기분이 나지 않았을 게 뻔한데도 내게 맞춰서 공을 쳐줬다. 못 친다고 타박하지도, 나랑 치기 싫어하지도 않았다. 내가 늪에 빠져 잘 치지 못하는 날엔 코트 안에서 이렇게 쳐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오히려 '초보랑 치면 땀 안 나서 싫다'는 말은 그보다 못 치는 이들 입에서 나왔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와 동등한 사람들이 아닌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유심히 봐."
<해리포터>에 나오는 말이다. 거기에 빗대보면 스쿼시 초보랑 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알 수 있게 된다. 초보에게 맞춰 쳐주면서도 자기 연습을 하려고 하는 사람인지, 초보라고 얕잡아 보는 사람인지는 코트 밖 의자에 앉아서도 훤히 보인다.
어른과 '으른'을 나누는 건 그리 대단한 기준이 아니다. 나잇값을 하지 못하면서 나이 먹었다는 사실만 들이미는 사람과 실력에 걸맞는 매너도 없이 남을 깎아내리고 뽐내기만 하는 사람은 코트 안에서든 밖에서든 어른 대접을 받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