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인내
긴 생머리, 커다란 눈을 가진 1학년 희수는 또래에 비해 자신의 의견을 당차고 조리 있게 말을 잘했다. 가끔 8살 아이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런 희수에게 특급 칭찬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날은 자치회의 일주일 전이었다, 학년별 대표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날로 1학년, 4학년, 5학년 대표, 회장과 선생님 2명이 모여 앉았다. 가장 활발하게 의견을 내는 건 역시 희수였다.
“선생님, 친구들이나 언니, 오빠들이 수업시간에 너무 떠들어서 방해돼요.”
“미술 수업하고 나면 정리할 게 많은데, 아무도 안하고 도망가요.”
희수가 쏟아내는 이야기에 나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반박할 게 하나도 없었다. 회의에 참석한 고학년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듣고 있었다. 활동 후 뒷정리를 하지 않는 건 반드시 고쳐야 했다. 그래서 자치회의 때 규칙을 정확하게 정하고 실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하나 더, “너희들끼리 교실에 있을 때 문 닫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만, 문을 완전히 닫는 건 어렵겠어. 대신 너희들끼리 있으면 가급적 선생님들이 들어가지 않도록 할게.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가끔 확인할 건데, 정도는 너희도 이해해 주길 바라.”
이 밖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회의는 언제나 치열했다. 아이들은 떠나고,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오갔던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희수가 다가왔다. “선생님은 내가 본 어른 중에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뜻밖의 칭찬에 당황했지만, 칭찬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자치회의 할 때 어른들 대부분 그냥 듣기만 하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른들 말을 잘 믿지 않는데 선생님은 우리 얘기를 듣고, 노트에 적어요.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걸 정확하게 이야기해주니까 이해가 되고 좋았어요.” 내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을 한 건데, 마치 큰일을 한 것처럼 말해주니 고마웠다.
내가 자치회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아이들의 선순환이다. 회의는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안건을 내는 방법, 발표할 때 자세, 상대방 이야기를 들을 때 자세 등 고학년들의 모습을 보며 저학년들이 배운다. 저학년이 고학년이 되면, 다시 동생들을 가르친다. 여러 학년이 모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둘째, 아이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만의 리더십으로 분위기를 끌고 가는 아이,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잘 공감해 주는 아이, 오히려 트집을 잡거나 불만만 표현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지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자치회의에 참여하는 어른의 역할이다. 자치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아이들과 의견을 나눠야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참 바쁘다. 그래서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울 때가 더러 있다.
자치회의는 상당히 역동적이다. 소외된 사람 없이 의견을 골고루 내고 발표를 어려워하는 아이를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내 의견이 수용될 수 있도록 조리 있게 말하는 연습을 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를 설득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이 어른일지라도 말이다. 이 과정에서 예의범절을 배운다. 그리고 아이, 어른 상관없이 서로가 수용됐다고 느꼈을 때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침묵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더 많지만, 결국 시간싸움이다. 어른만 포기하지 않고 곁을 지켜준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