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어느 날 어디선가 삶을 이루는 것은 사랑과 사람이라고,
그래서 삶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문득 떠올렸다.
나는 이제야 사랑도 사람도 삶도 조금씩 알 것 같다,는 말을 남기면서.
사고처럼 쿵하고 시작되고 절절 끓고 죽고 못살아야만 사랑인지 알았던
사랑을 받을 줄 몰라 사랑받으려 사랑을 마구 주었던 그 어린 시절의 나는
교통사고 같던 사람과의 만남이 사랑인 줄 알았고, 절절 끓는 마음이 그 증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에 나는,
늘 그랬듯 받고 싶어 주었지만 받지 못한,
텅 비어버릴 만큼 줄 줄은 알아도 챙길 줄은 모른
그래서 내 가치와 소중함 마저도 우스워진 사람이 되어있었다.
받은 것이라곤 호르몬이 충동한 것이었던 사랑이란 이름의 무언가와
평생을 안고 가야 하는 상처와 말들뿐이라니.
이뤄질 리 없는 약속보다도 처참한 신세가 나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어디에서도 나는 갈 곳이 없고 기댈 곳이 없어서
그래서 정처 없이 살다가 죽으려 받아들인 마음과
그럼에도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들인 내 노력의 결과로는
아무래도, 너무한 일들뿐이었으니.
마지막 꿈까지도 가져가는구나, 하고 덮어두고 살다 빨리 정리할 삶.
그게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인 것 같아 혼자이려던 나에게
어느 날 잠시 환기하러 열어둔 창 틈새의 바람 같은 사람이
그저 지금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테니 받아만 보라는,
받는 사랑도 해보라는 참 낯선 말과 함께 다가왔다.
나는 이래서 이런 게 어려워요,라는 말에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라는 대답이
나는 이런 일들이 있었고 두려워요,라는 말에 무엇 하나 당신 탓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여태껏 주기만 해봤으니 그냥 받아봐요.라는 대답이
아무 조건 없이, 무얼 하지 않아도, 나의 쓸모와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고 예뻐하고 아껴주고 사랑해 줄 테니 익숙해져 보라는 그 말이
어쩌면 내가 평생을 듣고 싶고 받고 싶었던 것만 같아 울컥해진 나의 마음 위로 범람했다.
한참을 부서져도 돌아갈 곳 있는 파도를 부러워하던 내게
파도가 와서 돌아갈 바다가 되어주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잠잠히 차오르는 감정이 마음이
잔잔하고 고요하게 깊어지는 우리가
온전한 나 자체로도 편한 내가
진짜 사랑이라 이름 붙일만한 것들이라고
맞붙잡은 손을 통해 보게 된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사랑은 내가 이다지도 아끼고 예쁨 받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착각을 넘어서서
그 사람이 보는 나를 보고 들으며 나까지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구나,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던 감정과 감각들을 마주하고, 나조차도 몰랐던 내 모습을 마주하고
이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이라는 걸
품 안에서 모든 걸 털어놓고 울었던 그날 밤
사람이 너무 좋아지면 사랑이 되어버린단 걸 알게 된 그 밤
나는 이미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너무 무겁고 중요한 의미라서 어렵다 말했던 “사랑해”라는 말을
발음해 버린 그 순간과 놀라서 되물은 그 모습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조금씩 사랑받는 것에 익숙해지다 못해 뻔뻔한 고양이 같은 생각을 하고,
고마워서 사랑하고 그랬더니 더 사랑받는 이 굴레에 있는 게 너무 좋아서
건강까지 챙겨가면서 오래오래 보고 싶은 사람이 될 거라고.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두렵고 행복해서 걱정하고 두려워할 생각에
마음껏 즐기고 느끼고 누리고 사랑하겠노라 다짐해 버리게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