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선물이란
언젠가 부지불식간에 주문하여 결제한 것들이
어느 고즈넉한 오후에 한꺼번에 도착하는 게 아닐까?
값을 치른 적 없는걸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서 말이지
그니까
우연이나 행운은
망각과 무심을 기반하는 것이지 않을까?
받으려면 반드시 내가 먼저 지불해야 하는데
그런 다음엔 받기로 되어 있는 사실을 또 잊어버려야 하는
가상의 산타는
원래 갖고 싶었던 소원보다 살짝 더 나은 것을
형태를 바꾸어 안겨주는 법이라
처음 것을 악착같이 기억하고 고집하면
이걸 놓치는 그런
잠을 푹 잘 자고 그래서 잘 잊어야
원래 갖고 싶었다고 믿은 거 따위
있었는지조차 몰라야
오는 모든 것이 반가운 거 아닐지?
산타가 좋아하는
말을 잘 듣는 아이란 건
잘 자는 그래서 어제 일을 까무룩 잊고
오직 지금만이 신나는
그런 아이가 아닐지?
뭘 받아도 다 고맙고 신나는
그런 아이로 살고 싶다.
짤즈부르크 크리스마스 박물관
갖고 싶은 걸 돈 주고 그 자리에서 사는 걸 거래라 하지
거래로 얻은 것들에 사람은 기쁘다가도 쉬 물리는 법
神이나 운명은
쉬 질리거나 물리지 않는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거래가 아니라 선물이 되기 위해선
시차와 트릭이 필요하다.
귀한 보물은
뜬금없고 생소한 나머지
좋은지 어쩐지조차 모르는 것들 속에
있는 것 같다.
그간 많지도 않은 소원을
좀 그릇되어 빌어온 건 아닌가 싶다.
내가 그토록 원한다 믿는 게
내게 의외로 안 어울리는 것일 수가 있다.
갖고 싶다 그렇게나 믿었던 건 역시
그 소원의 목적어가
남들의 선망이 집중된 그 에너지가
내 안에 선망을 다시 일으킨
그 그림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