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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Dec 05. 2024

15. 1도 모르는

지금은 몰라도 되는 

숫자 카드를 손에 든 나는 11 명의 아이들에게 묻는다.


"What is this?"

 

22개의 눈동자가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3주 전 처음 만났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박아놓은 듯한 그 눈망울들이 얼마나 예뻤던지.  

콧물 자욱 허옇게 붙어있는 까만 윤이 나는 피부도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볼 때마다 꼭 안고 내 볼을 비비면서 예쁘다고 (Nzuri) 사랑한다고 (Nakupenda)를 고백했는데. 

지금은 마냥 해맑은 아이들의 별빛 같은 눈망울과 표정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변한 것은 사랑이 아닌 표현의 방법일 뿐)


“얘들아. 선생님이 그동안 하루에 수백 번도 넘게 말해줬잖아.  What is this? 이게 뭐예요? Hii ni nini?라는 말이라고”라고 열변을 토하고 싶었지만 스와힐리어가 비천한 덕에 토하고 싶은 열변은 가슴에 묻고 대신 “Hii ni nini?”라고 질문을 다시 한다. 

“이게 무엇일까요?”


그제야 아이들은 앞 다투어 손을 번쩍 들고 소리 높여 대답한다.  

“에이(A)” “원(1)” “쓰리(3)” “비(B)” “씨(C)”.... 11명의 아이들이 모두 다른 대답을 한다.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 같다.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자신만만해서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내 손에 들려진 카드는 숫자 1이었다. 

1이라고 대답한 아이에게 다시 숫자판을 보이면 물었더니 이번에는 ‘B’라고 대답한다.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11명의 아이들 중 숫자 1을 아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1이 숫자인지 글자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What is this?”라니. 

이곳에 도착하고 며칠이 되지 않아 나는 선교사님이 운영하는 유치원의 선생님이 되었다.  

할 줄 아는 스와힐리어라고는 간단한 인사말과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단어들이 고작인 내가 울지 마(Usilie) 왜 울어?(kwa nini unalia) 빨리 와(njoo haraka) 하지 마(usifanye) 선생님 봐 (angalia mwalimu)등 수업에 정말 필요한 몇 가지 언어를 습득한 뒤 호기롭게 선생님이 된 것이다. 


“용기야? 만용이야?”

나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24명 정원에 2명의 교사가 전부인 유치원에 벌써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있었고 하루에도 한 두 명의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데리고 왔다.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부모들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50명이 넘는 유치원생들을 2명의 교사가 케어해야 했는데 너무 버거워 보였다. 

특히 이제 겨우 똥오줌을 가릴 것 같은 3-4살 막내들은 이제 막 글자를 익히고 공부에 재미를 붙인 언니 오빠들을 위해서도 일대일 케어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 케어가 필요했다.  

교사가 필요했지만 시골마을에 교사를 구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렇게 하여 교사를 구할 때까지만 내가 맡아보기로 한 것이었다. 

선교사님이 부탁한 것은 간단했다. 

알파벳과 숫자 10까지만 영어로 알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랑만 주면 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랑에는 한계가 있었다. 

일단 아이들에게 나는 선생님이 아닌 외국에서 온 마마였다. 

달려가 안기면 언제나 안아주고, 가끔씩은 몰래 사탕도 입에 물려주고, 만나면 따뜻하게 웃어주기만 했던 (하긴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 웃는 것 말고는 딱히 마음을 보여줄 게 없었으니) 그래서 어쩌면 만만했던 마마가 a.b.c.d와 1.2.3.4를 가르치고 신발을 정리하지 않거나 줄을 서지 않으며 훈육을 하는 선생님이 되었으니 아이들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의 비천한 스와힐리어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고 내가 회초리를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더욱 말을 안 들으려고 했다. 

당연히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첫 수업에 들어가기 전 나는 최선을 다해 수업자료를 준비했다.

두꺼운 박스로 숫자판을 만들고 스케치북에 알파벳을 적고 손가락 인형을 만들어 아이들이 쉽게 숫자와 색깔을 익힐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굳은 다짐을 했다. 회초리는 들지 않을 것이라고. 

(이곳은 애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 해서 체벌이 일상다반사이다)

큰 소리도 치지 않고 윽박도 지르지 않는 나는 다정하고 상냥한 사랑 많은 선생님이 되리라. 

다짐하고 알찬 계획도 세웠다. 

      

타이슨이 그랬지. “누구나가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에는”     


아이들은 쉬지 않고 나에게 잽과 훅을 날렸고 어퍼컷으로 나를 당황하게 했다. 

열흘이 지나지 않아 어느새 내 손에는 회초리가 들려있었고, 조용히 해. 눈감아. 앉아.라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랑도 말이 통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은  기저귀 겨우 뗀 문맹의 아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1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숨 쉬는 날이 많아졌다.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노래를 만들어 가르쳐주기도 했다. 

A.A.A. APPLE. B.B.B.BANANA. C.C.C.CAT. D.D.D.DOG.....


다행히 아이들은 신나게 따라 불렀다. 

하지만 애플은 미지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그 무엇이며 바나나는 Ndizi(스와힐리어 바나나)이며 고양이는 paka(스와힐리어 고양이)  

일주일이 지났을 때는 아이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몰랐던 것이다.

열흘이 넘도록 하루에도 열두 번씩 노래는 불렀지만 아이들은 몰랐다. 

오히려 왜 Ndizi를 banana라고 할까? paka를 cat이라 할까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떤 아이는 나에게 가르쳐주기도 했다. 

이건 banana 아니고 ndizi라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교실밖에서 활개치고 돌아다니고 있는 원숭이도 이 정도로 반복해서 가르치면 알지 않을까? 생각까지 들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래, 나의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못 가르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니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암담했다.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는 나에게 선교사님은 희망인지 절망인지 헷갈리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이들 알파벳 다 익히려면 1년 정도 걸릴걸요?"

에이~설마. 


"처음이라서 그래요. 집에 가도 공부하는 분위기도 안되어있고 교육 환경이 전혀 안되어 있으니깐요.

부모들도 문맹인 집도 많아서 가르쳐 줄수도 없고. 유치원에서 잠깐 공부하고 가는 게 전부인데 한국아이들 같지 않아요. 사과를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도 있을 걸요?"


사과를 본 적이 없다니. 

그래. 맞았다. 모든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모르고 있었다. 더 몰랐던 것은 나 자신이었는지도.  

특별 케어가 필요한 문맹의 3-4살 아이들 11명쯤은 이라고 자신했던 나의 용기는 무지에서 비롯된 교만이었다.      

사과를 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에게 A.A.A.APPLE. 이라니.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정작 한숨을 쉬고 짜증을 내야 했던 이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나에게 마음을 보여주었을 텐데,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아이들을 답답해했고 안타까워했다.  

말통 하지 않는 선생님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아이들은 보름 넘게 나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애플이 뭔지 몰라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요!! 내 말 좀 들어달라고요. 그딴 거 말고 우리 놀아요" 


정말 1도 몰랐던 것은 나였구나.      


시간을 내어 2시간을 넘게 차를 타고 모시 시내에 나가 우리 동네에서는 구경도 없는 사과와 비스킷과 초콜릿을 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내가 타고 온 비행기가 무엇인지 몰랐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종이비행기를 만들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내가 나눠준 종이비행기를 바닥에 놓고 한참을 머리를 모아 의논을 하더니  삐끼삐끼(오토바이)처럼 굴리면서 놀았다.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비로소 종이비행기의 용도를 알게 된 아이들은 세상에 이런 장난감이 있나 좋아라 하면서 놀았다. 

"Mwalomu asante"  (선생님 감사해요)라는 말을 연신하면서. 

     

오늘 간식은 에에에 애플. 비비비 비스킷. 씨씨씨씨 초콜릿이다.     

아이들 마음 1도 몰랐던 내가 1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건네는 화해의 마음이었다. 

우리 느려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알아가자는 고백이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나의 마음을 에이 애플과 비 비스킷과 씨 초콜릿에 담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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