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부터 우리집은 우왕좌왕했다.
늦은 오후 아들에게 친구들과의 온라인 게임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될 수 있으면 이른 오후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아들 눈치를 살피며 계획을 세웠다.
이렇듯 사춘기 아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시간과 장소의 타협에서부터 시작된다.
"난 바다가 보고 싶은데... 너무 오래됐어, 안 본 지."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라,
주기적으로 나는 바다를 보러 간다.
큰 바위를 향해 과감하게 달려드는 파도가
철썩! 온몸으로 부딪히는 그 용기가 좋다.
결국 그 굳건해 보이던 바위도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영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멀리,
포항에 가보고 싶다고 슬그머니 의견을 피력했다.
일본인 가옥거리를 걸으며 트렌디한 가게들을 구경하고,
파도 소리 앞에 나란히 앉아 있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의 의견은 달랐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자."
그 말인즉슨, 딱히 여행을 가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뜻.
아들의 기준에 대한 이유는 알겠지만,
'여행'이라는 명목하에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한 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감탄하고 신기해하는 것.
틀어놓은 노래에 맞춰 목청껏 부르고,
장시간 운전하는 남편이 지루하지 않게
쉴새없이 옆에서 수다를 떠는 것.
그리고 잠시 다리를 펴기 위해 들른 휴게소에서
군것질거리를 사 먹는 그 낙까지,
나에게는 모두 여행이다.
그래서 아주 간혹,
목적지로 가다 어쩔 수 없이 되돌아 가야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이미 나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모두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어쨌든 그렇게 약간은 어긋나는 협상 끝에,
남편이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경주는 어떠냐?"
경주라고?
순간 남편이 늘 말하던 '여행지침 제5조'가 떠올랐다.
"경주에 가면 반드시 불국사는 들러야 한다"는 그의 고집스러운 조항 말이다.
아, 그렇구나.
남편의 경주 추천이라는 말은 곧,
"이번에도 불국사에 꼭 가고 싶다"는 뜻이구나.
나는 순간 당황했고 아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지금까지 주로 엄마가 여행 목적지를 주도해왔으니,
이번에는 아빠에게 그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 같았다.
... 어쩔 수 없지, 뭐. 아들이 그렇게 하자는데...
바다는 훗날을 기약하며 경주로 향하게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불국사.
며칠 전 39도까지 치솟았던 기온을 생각하면,
한여름의 시작답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지만
다행히 그날은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기분이 좋은 예감이 들어 잘 왔구나 싶었다.
몇 년 전 불국사를 찾았을 땐 비가 왔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기분이 좋다며
젖은 돌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매번 기념품을 사는 건 아니었지만,
절이라는 공간이 어린 아이들에겐 심심할 수도 있는 곳인데
즐겁게 시간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기념품 하나씩 고르라 했었다.
그때 아이들이 고른 것은 자기로 만든 새 모양의 호루라기였다.
머리 안에 물을 넣고 불면 휘루루루루 휘루루루루루, 진짜 새가 우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신기하고 아름다워 한참을 불며 깔깔 웃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기념품 가게 앞에서 말했다.
"하나씩 골라볼래?"
하지만 아이들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
음… 이제 다 컸다는 뜻이겠지.
괜한 물건 하나 사느니 안 사는 게 낫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데—
왠지 모르게 조금 아쉬웠다.
역시, 남는 건 사진인가 보다라고 느낀 것은 다보탑을 봤을 때였다.
마치 눈 앞에 그 장면이 있듯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모습.
어린 딸아이가 뭔가에 삐쳐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고, 그 모습을 아빠가 안아 달래던 순간.
그때 찍은 사진 한 장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또렷한데, 딸은 그 기억이 없다 했다.
이럴 때면,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부모에게 선물이라고.
우리에겐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기적 같았던 순간이,
아이들에겐 그냥 지나간 어느 하루였다는 걸 떠올리면—
조금 쓸쓸하면서도 그래서 더 소중해진다.
우리는 다보탑과 석가탑을 구경하고, 부처님께도 절을 올렸다.
전 세계 사람들이 오가는 불국사이니만큼,
가족의 건강과 평안, 그리고 조용히 품고 있는 소원 하나씩을 떠올리며 등을 달았다.
그렇게 불국사를 두리번두리번 돌아보다가 '나한전'이라는 곳에 닿았다.
구석에선 외국인 몇 명이 해설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나머지는 고요했다.
아들과 딸, 남편과 나. 우리가 이 절 공간의 유일한 한국 관람객처럼 보였다.
이곳 뒷마당에는 자갈과 돌멩이로 쌓아올린 돌탑이 유독 많았다.
땅바닥뿐 아니라 기와 담 위에도,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누군가의 바람,
누군가의 기도,
누군가의 간절함이 말없이 얹혀 있는 듯한 돌무더기들.
우리도 올려볼까 싶어 주변을 살폈지만,
마치 빗자루로 싹 쓸어버린 듯 돌멩이 하나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작은 돌 하나를 주워 조심스레 올려두었을 때—
딸이 갑자기 말했다.
"엄마, 일부러 절에서 돌무더기 몇 개 쌓아놓은 거 아닐까?
돌멩이 하나하나 치우기 귀찮으니까.
이렇게 돌무더기 몇 개 만들어두면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돌멩이 주워서 한 곳에 쌓아주잖아.“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말은 엉뚱하지만, 묘하게 일리가 있었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돌 하나하나를 정리하는 대신,
사람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고,
그 의미를 통해 질서를 만들어내는 방식.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기도의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실용적 효율의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이란 결국 그렇게, 서로 다른 의미들이
같은 자리에 포개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돌무더기를 만든 사람의 마음과,
거기에 돌을 올리는 사람의 마음과,
그 모든 걸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엇을 살까'에서 '왜 그럴까'로 바뀌었다는 것.
잘 자라고 있구나...
그 자체로 선물인 우리 아이들이
먼훗날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혹시 기억에 남지 않는 순간이었다 해도
남편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던 그 기억을
우리들은 또다시 떠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