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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한그림일기]오늘 만났다면 알지 못했을.

2023.5.29

by 수수한

초록이를 잔뜩 그릴 줄 알았으면 초록 계열 잉크로 그렸을 것을.

엄마가 준 바나나 보약을 그릴 때까지만 해도 식물을 잔뜩 그릴 줄은 몰랐다.

일단 작은 조각을 그리고 나서야 그다음으로 그리고 싶은 것이 떠오르기에 첫 선의 시작은 오늘 예뻐 보인 보라색이었다.


식물을 들였다 하면 죽이곤 해서 죄책감에 더 이상 화분을 들이지 않았더랬다.

아이를 키우니 키우는 것에 어느 정도 내공이 생긴 것일까.

코로나 초기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던 때에 눈도 갑갑하여 조심스럽게 초록이를 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 들인 아이들 중에 이미 초록별로 간 아이들도 있지만, 키웠다 하면 다 죽이는 오명은 씻을 수 있었다.


많은 초록 식구들 중

가장 오래 함께해 온 아이들 몇을 담아보았다.

이들 중 나의 최애는 박쥐란.

처음 만났던 갈색 포트 안의 작은 모습이 떠오른다.

크고 제멋대로 멋지게 휘어지며, 핏줄 같은 잎맥이 선명한 너의 잎을 보며

마치 너의 성장이 다 내 몫인양 의기양양해진다. 사실 거의 너의 공인 것을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 모습의 너를 만났으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다.

3년 전 작은 너를 만나서

오늘의 너까지 보아왔기에,

그러니까 이것은 너를 보는 사람 중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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