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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라는 타인

누구보다 가깝지만 어떤 이보다 먼 사이

창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아내의 표정이 때로는 맑게, 때로는 흐리게 변한다는 것을. 한 지붕 아래 숨 쉬는 우리는 누구보다 가깝지만, 어떤 순간에는 누구보다 먼 사이가 된다.


화내는 아내의 모습은 싫다. 그 날카로운 시선과 차가운 어조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그럴 때면 나는 집에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반면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평화롭다. 그런 아내의 평화로움으로 인해 가정에도 편안함이 깃든다. 그 미소를 더 자주 보고 싶어 애쓰지만,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도 그랬다. 동생을 위해 필요한 자리였다. 앞으로 진행할 사업을 위해 부탁을 해야 하는 자리였다. 술잔이 오갔다. 한 잔, 두 잔... 어느 순간 필름이 끊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카카오톡에는 아내의 메시지가 가득했다.


"걱정돼서 그래요. 연락이라도 해요."

"전화했는데 안 받네요."

"신경 쓰지 말고 잘 먹고 와요."

마지막 메시지에는 차가움이 묻어났다. 그녀의 걱정을 무시한 채 나는 누구를 위해 그렇게 마셨나? 동생 하나 챙기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은 탈출구를 찾아서였을까?


오늘 아침, 아내는 말없이 아침상을 차렸다.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준비했음이 분명했다. 숙취에 시달리는 내게 해장국을 끓여주었다. 고마웠지만, 어제의 일이 미안해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오늘 저녁도 약속 있어요?" 아내가 물었다.

"7시에 회사 일로 약속이 있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출근길에 올랐다. 하지만 저녁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또 다른 술자리. 또 다른 핑계. 6시 30분이 되어서야 나는 회사에서 나왔다. 아내가 보낸 "조심히 다녀와요."라는 메시지에서 친절함보다는 체념이 느껴졌다. 가슴 한편이 답답했다. 속이 깎여나가는 듯한 느낌. 대체 술자리에서 얼마를 마셔야 할까? 아니, 얼마를 마셔야 이 공허함이 채워질까?


차 안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내와 늘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늘 평화로울 수는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때로는 풀리지 않는 침묵이, 때로는 격해지는 말다툼이 있었다. 어려운 시기를 견디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사실 그녀가 화를 내는 건 그만큼 나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관심이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텐데. 그녀의 화는 관심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때로는 화를, 때로는 기쁨을 표현한다. 기쁨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화내는 그녀의 모습도 수긍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기가 원하는 모습만을 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없는 인형일 뿐이다.


약속 장소로 가던 길, 나는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죄송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술자리를 취소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집에 가고 있어요. 오늘은 일찍 들어갈게요."

잠시 침묵 후 그녀가 말했다. "알겠어요. 저녁 준비 할게요."


그 목소리에는 따스함이 묻어있었다. 나는 알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원하는 건 완벽함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아내라는 타인과 함께 걸어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빗방울이 그치고 하늘이 맑아졌다. 마치 내 마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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