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않는 편지02
드디어,
지난번 사놓은 편지지에 용서의 편지를 썼다.
용서. 말로는 몇백 번이고 용서했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용서한다고 쓰는 것도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너무나 큰 거만한 착각이었다.
진심을 담은 용서, 완전히 내려놓고 상대에 대한 행복을 빌어주는 용서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 편지를 쓰기 위해 편지지를 사고 펜을 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편지지를 사놓고도 쓰기가 힘들었다.
편지를 썼다고 내 마음의 미움이 다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뜩 생각나서 내 안의 미움이 요동을 칠 때도 있다.
그리고 용서를 해서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상대가 나를 자극하는 상황이 왕왕 생겨 싸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걸으면서 진심을 담아 편지에 쓴 내용을 상대에게 말하듯 읊조려본다. 너무 화가 난 상태에서는 한번 읽을 땐 그저 그렇다. 나만 용서한다고 끝 이 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그 상대는 올리머리를 자주 하는데 그 머리를 잡고 쥐어뜯어버리고 단판을 짓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판을 지은들 나에게 과연 무엇이 남을까?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뿐이지. 그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수십 번쯤 읊조리다 보면 울컥하는 마음이 들면서 마음이 차분해진상태가 된다. 그러고 나면 나는 읽기를 멈추고 행복한 일들을 생각하거나 핸드폰사진첩을 본다.
그리고 미움이 비워진 내 마음을 행복으로 채운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용서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당한 걸 떠들어대고 그 상대를 깎아내려야지 덜 억울할 거 같았기에.
하지만 이제는 왜 용서가 나를 위한 것인지 조금은 알겠다. 미움을 비워낸 내 마음의 자리에 행복을 채우다 보니 요즘엔 내가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어졌다.
이 봄날의 기운을 받으며 용서하며 걷는다.
내 마음에 있던 미움이 비워진 자리에 봄날이 햇빛이 가득 채워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