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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현 Oct 02. 2022

『자기합리화』 문제는 국익이야. 바보야

전쟁의 시청자들 #9

이제 한국의 시청자들에게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이미 '불안의 불길'북쪽을 향해 강하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시청자들이 조금 안정을 찾을 때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불쏘시개를 던져 넣을 겁니다. 이 불안(不安)의 아궁이를 탈출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한 일이죠. 아, 한 가지 대안이 있긴 하군요. '정신 승리'를 하면 됩니다. 이렇게 말이죠.

 

1." 좋습니다. 설령 '대통령님'이 힘에 의한 평화, 요컨대 선제 타격을 신봉하고 수위를 넘나드는 군사적 자위권을 발동하며 '종이와 잉크로 된' 평화협정을 찢어발긴다고 해도 그리하여 지금껏 일궈온 대화의 테이블이 박살 난다고 해도, 다 좋습니다.


2. 다 괜찮습니다. 표현 자체는 좀 호전적 일지 모르나 그런 제반의 결단들이 진정성 있는 신념과 비전 그리고 '대통령님' 당신이 공언하셨던 대로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확고한 연대의 정신"(유엔 기조연설) 아래 성립하는 것이라면, 비록 방향은 다르더라도 평화를 위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픽사베이


1은 좀 그렇지만 2와 같은 생각을 가진 시청자들은 꽤 많을 겁니다. 그럴 수 있다 생각하고 또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제로 '대통령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누구보다 강한 비판을 가해 왔습니다. 외려 누군가 등만 밀어준다면 앞장서 싸울 정도로 의지가 강해 보이죠. 물론 '대통령님'께 비판적인 시청자들은 그 의지라는 것의 순수성을 믿지 않을 겁니다.(전쟁의 시청자들 #8 참조) 하지만 '대통령님'을 지지하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러시아의 침략전쟁에 대의는 없습니다. 시야의 폭을 넓혀 국제관계적 측면에서 서방의 책임론을 제기할 순 있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부차적인 명분에 지나지 않죠. 하여 러시아에 적대적이고 비판적인 '대통령님'의 언행들에도 큰 도덕적 하자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대통령님'을 지지하는 시청자들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자유 세계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그를 인정하고 신뢰를 보내는 거죠.


다만 문제는, 여기서도 역시 위선입니다. '대통령님'은 본인이 그토록 강조해마지 않는 '자유'의 수호를 위한 순수한 도덕적 의지를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대선 유세장에서 나부낀 우크라이나 국기에 떳떳할 만큼, 자신의 반려자가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케 하는 일명 '우크라 룩'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만큼, 유엔과 나토 등에서 '자유'의 메신저를 자처하며 '뼈를 때리는'(?) 말로 러시아와 중국을 곤혹케 했던 만큼, 우크라이나의 처지와 한국의 처지를 등치(値)하며 수많은 국민들의 위기감을 자극했던 만큼, 스스로가 언명한 대의와 도덕에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행동을 보였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한국의 시청자들은 '대통령님'의 의지를 -다소 거친 사람이라는 정도의 핀잔을 줄 순 있겠지만- 신뢰했을 테죠.


좌: 윤석열 후보 유세 현장에 등장한 우크라이나 국기(출처: 뉴시스), 우: 김건희 여사가 선보인 우크라이나룩 (출처: <이데일리>)


2022년 6월 10일, '대통령님'은 그런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할 작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당시 여당 대표로 우크라이나 전쟁 격전지 곳곳을 방문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실로 찾아왔던 거죠. 그와의 환담은 우크라이나를 향한 자신의 지지와 응원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리는 좋은 기삿거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 "(우크라이나는) 전쟁만 아니면 진짜 한번 가볼 만한 곳이라 들었는데. 오데사(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이런 곳이 좋다면서요." 


이:  "나중에 가보세요, 괜찮아요. (러시아에) 오데사만 안 먹히고 다른 데는 다 먹혔습니다."


우크라이나 남부 최대의 항구인 오데사는 '대통령님'의 발언이 나올 6월 당시 러시아의 해상봉쇄 등으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4월에는 러시아의 미사일 폭격으로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포함한 8명의 사람들이 사망할 정도로 참혹 전쟁의 상흔이 남은 곳이죠.  이런 비극 때문에라도 이 도시는 국내에 꽤 잘 알려져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은 이런 오데사를 "진짜 한번 가볼 만한 좋은 곳", 즉 관광지로 취급해버렸습니다. 그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상은 안중에 없어 보였죠. 이준석 대표는 '관광지' 오데사 여행을 꿈꾸는 '대통령님'의 의중을 잘 파악했습니다. 아직 '안 먹혔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가보라.

 

사실 '대통령님'은 후보 시절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구설에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의미 있는 국경일인 삼일절 오전, '대통령님'의 트위터에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다"는 짧은 문구와 함께 좀처럼 의미를 알기 어려운 사진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화가 난 듯한 사람의 표정이 그려진 작은 귤. 이른바 '귤 트윗' 사건이었습니다. '전쟁이 장난이냐'는 국내외 비판들이 쏟아졌고 트윗은 곧 삭제됐죠.

출처: <연합뉴스>

'대통령님'은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수많은 증거가 필요한 범죄의 증명과는 달리 위선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밑천이 드러나버린다는 것을요. 이쯤에서 위선의 정의를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겉으로만 착한 체함. 또는 그런 짓이나 일."




그때 한 시청자가 저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이렇게 '대통령님'의 심기를 불편케 하느냐는 거겠죠.


"그만 좀 해! 다 그런 거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 내 인생살이 자체가 위선적인 거야."


뭐, 맞는 말입니다. 딱히 이 떠오르지 않네요. 뭐 좀 아는 듯 이것저것 지적 해대지만 저 또한 '내로남불'의 화신입니다. 일례로 저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맞아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 방산업계의 위선'을 비판면서도 한국의 이른바 'K 방산'이 누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에 대해선 눈감고 죠. 이건 분명한 위선입니다. 제 주장대로라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오십 보 백보' 아닌가요? 아아, 다시 입이 오므라들고 있습니다.

출처: 픽사베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의 방위산업이 특수를 누릴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실제로 지난 7월, 세계 최대의 항공·방위산업 전시회인 영국 판버러 에어쇼에 참가한 한국KF-21, 소형무장헬기 LAH, FA-50 경공격기 등 최신예 무기들이 전시하며 수주 공략에 나섰습니다. 특히 FA-50 경공격기가 잘 팔려나갈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이 두드러졌다죠. 저는 매우 우연히 관련 보도를 접하게 됐습니다. 무기 개발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의 인터뷰가 삽입된 평범한 기사였죠.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안 사장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중 유럽·아프리카·중동 등지에서 FA-50에 대한 '수요'가 생기는 등 수출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KAI가 맞이한 대운(大運)을 잡기 위해 모든 역량을 결집하겠다"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에 모처럼 다가온 '대운(大運)'이라고요? 어..아..그렇죠, 그렇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늘어난 유럽의 무기 수요로 한국의 방위산업은 둘도 없는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전쟁을 그렇게 비토하고 평화를 운운해왔던 한국이, 이 부분에 있어선 어찌 그리 천연덕스러울 수 있는지. 하지만 저는 그런 도덕적 자괴감을 느끼기보다, KAI 사장님의 '입'을 더 원망했습니다.


'에이, 설사 그렇다 쳐도 이렇게 대놓고는 말하지 말지. 알아서 적당히 알아들었을 텐데.'


아마 여러분도 한국의 'K 방산'이 최근 잘 나가고 있다는 기사들을 접해보셨을 겁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1년 한국의 무기 수출액은 지난 5년에 비해 177% 증가한 38억 달러로, 세계 8위의 무기 수출국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21년까지의 통계가 이러했으니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2022년 이후의 무기 수출은 훨씬 더 가속화되겠죠. 지난 8월 17일, '대통령님'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세계 4대 방산 수출국가로 만들겠다'라고 공언하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은 다른 건 몰라도 무기 측면에서 만큼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요한 플레이어입니다. 특히 폴란드는 우크라이나로 지원하기 위해 빠져나간 자국의 전력을 벌충하기 위해 한국산 무기를 대규모로 수입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40조 원 수준의 무기 계약을 한국과 체결했죠. 국내 언론은 '잭팟'이 터졌다며 환호했습니다. 외신들조차 한국이 ‘방산 메이저리그’에 진입했다(CNN), 한국의 방위산업에 "배울 것이 많다"(니혼게이자이 신문)며 부러워할 정도였습니다.



앞으로의 전망도 매우 매우 밝습니다. 지금 한국의 무기상들은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들, 슬로바키아나 리투아니아 등을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신이 났으면 우리나라 국군이 써야 무기들까지도 '일단 팔고 볼' 정도로 성심을 기울이고 있다니까요.


굳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들은 '무기 수출대국' 한국의 '미래 먹거리'입니다. 그 분쟁 또는 전쟁이 누구에게 정의가 있고 명분이 있는지는 큰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한겨레> 권혁철 기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무기 수출위험지수(Arms Sales Risk Index)가 40 이상으로 높은 이집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에 무기를 수출했습니다. 무기 수출위험지수란 무기의 수출이 그 나라의 인권, 부패 등의 측면에서 부정적 후유증을 가져올 가능성을 말합니다. 권 기자는"방산 수출을 산업 측면에서 ‘대박’으로만 좁게 볼게 아니라 인권문제, 국제정치 등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로 다뤄야 한다."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청자들은 별로 공감하지 못할 겁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한국의 시청자들은 이미 'K 방산'의 대박만을 조명하는 다수 언론과 이른바 전문가들의 분석으로 '국뽕'에 절어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권 기자의 그런 이상주의적 지적보다 '현실(=돈)'에 가까운 이런 말에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평화의 이벤트를 비중 확대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쟁이 끝나도 쇼핑은 계속된다." -<헤럴드 경제>(2022.9.26.)-


저는 이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의 뿌듯함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의 'K 방산' 멋지잖아요. 조금 세 보이기도 하고. 우리 한국에도 마침내 '록히드마틴'같은 회사들이 들어서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삼성 같은 세계적 회사가 우리의 자부심이 되듯 그런 방산기업도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어때요?"

"그러니까 저는... 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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