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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Dec 04. 2017

[독후감] 82년생 김지영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남자의 시선에서, 여자의 삶은 거리감 있는 이해 범주 바깥의 그것이었다.  이해하지 못함의 근원에는, 날 때부터 가부장이라는 구조적 인식의 수혜 아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함으로 인해 고민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으로 모든 현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드러내기 애매한 미묘한 불편을 민감하게 느끼지 않는 한, 모든 것은 그저 자연스러움이었고 그것은 그대로 가부장의 구조안에서 약자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당함이 된다. 

  가부장적 인식과 그것이 만드는 성적 불평등을 일상에서 인식하고 있었다.  일상의 불평등을 느슨하게 해소하려 나름 노력했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의 삶은 가부장과 사회 안에서의 여성이 짊어지는 불평등과 부당함은 나의 느슨함을 넘어 좀 더 뿌리가 깊음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배려로 해결되지 않음을 알게 한다.  가부장과 사회구조에서 순응한 이전 세대의 등떠밈이 구조를 고착하고,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사회인식에 순응하거나 편리를 느낀 현세대의 무뎌진 감각이 불평등과 부당을 단단하게 고착시킨다.  단단히 박힌 뿌리는 쉽게 변하지 않을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깨닫게 한다.  

  가부장은 자본주의를 만나 성차별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자본이 위기를 맞거나 또는 불경기라는 표현으로 성장이 둔화될 때, 가부장 인식은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일방적으로 여자의 희생을 강요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능력면에서 크게 차이가 없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가장으로서의 남성과 출산이라는 여성의 생물학적 역할은 수시로 생각을 지배하며 남녀 간의 차이를 실체화시킨다.  게다가, 그림자 노동으로 표현되는 집안에서의 노동은 가치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며 여성은 가치 없는 노동의 주체로 전락한다.  그렇게 소외는 겹겹으로 공고화된다.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은 가부장 인식에 물든 자본주의, 자본주의 특성인 노동의 소외, 혈연 안에서의 가부장적 역할의 강요, 그림자 노동 주체로의 떠밀림 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각각의 특징이 겹을 만들어 모든 김지영의 삶을 단단하게 규정한다.  사실 압축적으로 나열된 김지영의 삶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가부장 인식과 남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 안에서 사는 남자들 중 한 사람으로, 현시대 한국사회 안에서 남자의 역할도 온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미묘함을 맛깔나고 분명하게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사회적 역할자로서의 남성역시 만만치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속도감을 넘어 급하게 써내려 간 듯한 간결하고 빠른 문장은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무척 생소했다.  픽션과 르포 사이 어느 지점에서 서술한 내용은 기자의 취재수첩 같은 느낌도 있었다.  빠르고 건조한 만큼 내용도 간략했다.  장르적 특성은 일단 차치하고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소설이었다.  그리고, 실체 하되 쉽게 깨닫거나 표현하지 못했던 현상과 인식을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문제의 근원과 뿌리는 생각보다 깊음을 분명하고 쉽게 드러낸 글이었다.  다양하게 나를 일깨우는 문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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