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항상 성장을 동반한다.

인생사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다!

by 꽉형 헤어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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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그리고 취직.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나의 주변이 바뀐 것처럼, 저의 삶도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인생의 큰 방향을 뒤흔드는 두 가지 사건을 연달아 겪게 되었습니다. 결국엔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졌지만, 그 1년은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이어졌던 다사다난한 시기였습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가족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2023년 2월, 석사 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수령함과 동시에, 인턴에서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계약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는 학업과 불안정한 생활로 인해 미뤄왔던 가족계획을, 다시 말해 2세 계획을 이제야 시작할 수 있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계획을 세운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저희에게 큰 선물이 찾아왔습니다.

첫 초음파 사진. 아직 ‘아기집’만 보이던 그 흐릿한 이미지였지만, 그 사진을 받아 들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함께 검진을 다니며, 대화를 나누며, 저희는 둘에서 셋이 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났고, 얼굴과 손발이 보이기 시작했고, 성별을 알게 되었으며, 출산 예정일은 다음 해 2월로 잡혔습니다.

당시 회사에는 육아휴직 중인 여성 직원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저는 장기 육아휴직 계획은 없었지만, 아이가 태어날 즈음에는 짧게라도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눈치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은 따뜻하게 축하를 건네주었고, 저희 부부도 무탈한 임신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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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인턴에서 정직원 전환 면접을 볼 때부터 저는 제 전공인 건축공학과 회사가 주로 다루는 건축설계 사이에 다소간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견적팀으로 배치되었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견적팀이 본사에 있었고, 본사는 제가 일하던 지사에서 차로 30~40분 거리의 다른 도시에 있었습니다. 자차가 없던 저는 기차와 버스를 환승하며 통근해야 했고, 출근에만 왕복 4시간이 걸렸습니다. 오전 8시까지 출근하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고, 일이 끝난 오후 5시에 퇴근하더라도 집에 도착하면 7시가 넘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모두 포함하면 새벽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최소 13시간을 일에 쏟아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그게 싫어서 독일로 넘어왔는데, 그것이 반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독일 철도(DB)는 연착으로 악명이 높아, 하루에도 몇 번씩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매일 본사에 출근할 필요는 없었고, 주 2회만 본사로 출근하고 나머지 3일은 지사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견적업무의 중심은 본사에 있었기에, 저의 포지션은 점점 애매해졌고, 그 불안정함을 저도 내심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행복할 독일의 최대 이벤트. 크리스마스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12월 초. 저는 권고사직을 당했습니다. 다행히 독일에서는 권고사직을 하더라도 일정한 해고 통보 기간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었기에, 저는 2월 말까지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일에 집중하기는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일할 새로운 회사는 찾으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와이프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가 막막했습니다. 연말이었고, 와이프는 임신 후기였으며, 아이가 세 달 뒤면 태어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거의 2주 가까이 혼자서 끌어안고 지냈습니다. 다른 회사에 지원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연말이었기에 빠른 답변을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와이프에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보름 동안 말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며 조심스레 고백했을 때, 와이프의 첫마디는 지금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말도 못 하고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 한마디에 그동안 꾹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왔습니다.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와이프는 괜찮다고, 금방 새 회사가 생길 거라고, 저를 위로하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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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와이프의 응원과 격려,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가 가져가 준 행복과 행운의 결과였을까요? 마치 그 응원에 하늘이 응답한 것처럼, 와이프에게 이야기를 꺼낸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같은 지역 내에 위치한 건축 엔지니어링 회사 한 곳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메일을 받은 그 주 금요일에 바로 면접을 보았고, 바로 그다음 주 금요일에는 정식 계약서 초안을 전달받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했던 건, 연봉이 이전 회사보다 약 30% 가까이 인상된 조건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전화위복이었습니다. 와이프의 따뜻한 이해, 곧 태어날 아이가 주는 설렘과 희망, 그리고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시작은 권고사직이었지만 쉬어가는 시간 없이 바로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와이프가 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줄어들게 된 소득 또한 제가 새 직장에서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순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면, 어떻게든 길은 열리게 되어있다고 하죠. 어느 순간 길이 막힌 듯 보여도 결국에는 다른 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그 길이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울지라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방향을 만나게 되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더 좋은 답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인생의 큰 변곡점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변화의 순간들이, 결국은 제 삶에 참 고마운 선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호기롭게 독일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적응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손에 쥔 졸업장을 들고 당당하게 첫 직장에 입사했지만, 1년 만에 마주한 건 권고사직이라는 낯선 현실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독일에서의 저의 삶은 단 한 번도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위기가 있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뚜렷했던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롤러코스터에는 안전바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려왔을 때 비로소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는다는 점을 몸소 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 뜻밖의 흐름이 때로는 뜻밖의, 하지만 더 뜻깊은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요.

불안은 저를 많이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흔들린 마음속에서, 불안했던 시간 속에서, 저는 조금씩 단단해졌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처럼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너질 줄만 알았던 그날의 경험들이, 결국은 다시 걸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리고 힘든 일도, 결국은 삶이라는 강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저는 이제야 그 순리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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