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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May 04. 2024

(수영장) 물 마시는 여자

인간은 결국 적응한다

“발차기는 무릎을 구부려서 미친 듯이 차는 게 아니에요. 허벅지 근육을 이용해 부드럽게 자연스럽게 차는 겁니다”



 강사의 말을 머리에 되새기며 발차기를 하면 ‘물에 뜬다’가 망해버렸다. 이걸 신경 쓰면 저게 망하고, 저걸 신경 쓰면 이게 망해버리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란 이럴 때 쓰는 말 같았다. 그러나 아직 일렀다. 곧 팔 돌리기를 시작하며, 이 총체적 난국이란 말을 확실히 절감했다.

           


 팔 돌리기를 시작하자 고개를 우측으로 빼며 호흡을 시작했다.  영상으로 보던 수영선수들의 그 순간은 매우 찰나였고 스무스하게 이루어지던데,  나의 그 순간은 죽을 듯이 힘들었다.  고개를 돌리고 수면으로 머리를 빼면 입이 안 벌어졌다. 어찌어찌 입을 벌리고 숨을 쉬려고 하면,  입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도대체 이 물 어디서 쏟아지는 것인가?






     

 수영은 에너지 소모가 많은 운동이라 그만큼 허기짐도 커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래서 다이어트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그러나 나는 수영 후엔 항상 배가 불렀다. 물을 하도 먹어서 트림까지 나올 지경이다. (수영을 한 지 1년이 넘은 지금도 종종 그렇다)

    


 수영장의 소독물을 마셔대서인가?  한동안 배탈에 시달렸다. 누군가는 피부 염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안구가 시리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푸석해지는 것은 공통으로 겪는 것 같았다. 수영장에 다닌 지 약 3주가 지나자 배탈은 그쳤다. 물을 그만 먹게 된 거라면 좋겠지만, 내 장이 적응한 것이리라.

    


 한 달이 지나자 판을 놓을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간의 유전자에는 뀐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동 눌림) 버튼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적응은 성장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내가 수영장 물에 적응하는 걸 보니 내 몸이 적극적으로 날 응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하고 배우고 변화시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몸의 적응을 체험하니 뭔가 기특하다.  



 성장이니 변화니 하는 자기 계발에나 어울릴 듯한 문장을 쓰는 이유는, 내가 몸으로 부딪히는 수영을 배움으로써 느리지만 천천히 나를 넘어서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예의 그 자기 계발서의 문장이 된 기분이다. 넘어선 후에 뭐가 있는지는 그때가 돼 봐야 알겠지.



 온몸으로 부딪힌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다한다는 말과 같다. 마침표를 찍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문장처럼 써보고 싶다.  앞으로도 무엇이든 온몸으로 해 볼 생각이다. 내 몸이 이토록 식상한 나를 응원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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