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하얀 거짓말의 당위성

: 헤어 디자이너

by 윌버와 샬롯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짧은 커트 스타일을 유지했다. 여러 스타일을 이미 경험했기에 솔직히 머리 길이나 모양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혹시나 어떤 헤어스타일도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나 하는 오해를 할지 모르겠다. 멘털이 강한 건지 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시간이 지나면 그 어떤 스타일이더라도 적응이 되더라는 경험의 축적일 뿐이다. 천연 반곱슬 머리에 자가 스타일링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짧은 스타일이 가장 편함을 돌고 돌아 깨달았다. 이후 오래도록 짧은 커트 스타일을 고수했다.


한데 최근 들어 머리를 좀 기르게 됐다. 미용실 가는 것에 게을렀던 탓인지 조금 기른 상태를 잠시 유지했더니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 몰라보기 시작했다. 생소했던 긴 머리가 신기했던지 잘 어울린다는 말까지 들었다. 변화에 그저 할 말이 없어하는 인사치레인지, 정말 그런 건지, 내가 눈치가 없는 건지 도통 그 의중을 알 수는 없었다. 다시 원래 스타일로 회귀하고 싶었지만 조금은 모험을 하고 싶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귀밑을 덮는 찰랑거림이 싫지 않기도 했다. 주변 반응을 약간 즐겼을 수도 있다. 거울 속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예전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도 타인의 훈수에 맘이 약해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전 스타일보다 조금 긴 상태인 지금이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닌지, 남의 시선이 더 맞는 것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스무 살 이후 한껏 헤어스타일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실험을 많이 했었다. 대학 때가 아니면 언제 머리 모양에 과감하게 도전을 하겠냐는 누군가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치장하거나 꾸미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기에 전문가의 손을 빌릴 방도밖에 없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기 위해 지금은 엄두도 못 낼 도전을 감행했었다. 비용 부담은 제쳐두고 오직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기 위한 지난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 시절 머리 좀 한다는 동네를 다니며 미용실을 때때로 섭렵했다. 그 시절 미용실에 있던 모든 미용기구를 내 머리카락은 기억할 것이다.


결국 나만의 스타일을 찾았을까. 여러 스타일을 시도해봤지만 들인 비용에 비해 얻은 교훈은 좀 허무하다. 결론은 더 이상 머리 하는데 비싼 돈을 들이지 말자였다. 가격이 비싸든 아니든 그 결과물은 그리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실험이 내게 더불어 얻게 한 것은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아도 되는 후련함이다. 그 정도 해봤으면 할 만큼 다했다 싶었다. 원이 없을 정도이니 다른 어떤 스타일을 더 도전하고 싶다는 갈망을 느끼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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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은 기르느냐 자르느냐라는 그동안의 주저함과 안녕했다. 외출해서 볼 일을 마치고 보니 시간이 좀 남아 미용실에 갔다. 어떤 펌을 하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커트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깨까지 닿은 길어진 머리카락을 이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이제나저제나 기회만 봤었다. 나온 김에 바로 단행했다. 가장 최근 맘에 들게 펌을 해준 미용실로 예약 없이 갔다. 예전에 해줬던 선생님은 다른 분을 이미 해주고 있어 다른 선생님께 맡겼다. 원하는 기장과 스타일을 말했더니 이 선생님 계속 딴 소리만 한다. 간단한 커트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희한한 주문을 내가 했는지 절대 그 스타일은 나올 수 없다며 내 현재 머리 상태를 정곡을 찌르며 타박한다.


‘선생님, 저도 알고 있다고요. 여태 살면서 내 머리 상태를 내가 모르겠어요. 제 머리가 이래 봬도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고요. 그냥 제가 말한 건 이 상태에서 선생님 최선의 노력을 해달라는 말이었어요. 단순히 그냥 기장만 싹둑 자르라는 게 아니라 나름 저한테 어울릴 만한 그 무엇, 그러니까 선생님의 모든 능력을 발휘해달라고요!’


속으로는 그렇게 따따부타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선생님 말이 옳고 물론 인정한다는 투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미용실 가는 게 언제나 어려운 숙제처럼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알고 있는 약점을 굳이 곧이곧대로 말해 주는 것이 여전히 껄끄럽기 때문이다. 미용실에서는 하얀 거짓말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너무나 정직해서 다시금 결점을 확인받는 과정을 거치고 싶지 않다. 그냥 알아서 최선의 선택을 해주면 좋으련만.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 노래가 미용실에 흐른다. 너무 때에 맞지 않은 선곡일까. 머릿결이 많이 상했다는 말에 잠시 속상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드라이 발로 윤기 나게 찰랑거리는 머리칼이 기분을 좋게 한다. 이 느낌은 일장춘몽처럼 내일 머리를 감고 나면 사라질지언정 지금은 랄라라 마음은 봄이 된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마치 내가 그대가 된 듯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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