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토끼
사랑 이야기구나. 이런 이야기를 보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긴 하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것, 여러 계절을 지내보고 사람을 판단할 것. 사람에 대한 그런 나만의 법칙을 만들게 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도 아니었는데 그런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이 아마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으면 나를 알아봐 줄 거라 믿었다. 어찌나 꼭꼭 나를 숨겼던지 끝내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결혼했다. 또 하나 삶의 지침을 선물처럼 건네주고 청춘이라는 내 무대에서 퇴장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소용없어,라는 마지막 방백과 함께.
난 좀 달라지기로 했다.
고요한 슬픔 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어요.
개미가 하품할 정도의 아주 미세한 소리였어요.
삐.
어떤 토끼에게 들렸던 미세한 소리처럼 자각한 내게도 그런 구조 신호가 들렸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결혼했다.
응답받지 못한 어떤 사랑도 어쨌든 사랑이다. 고요했지만 깊었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가끔은 책을 보다가 떠올릴 추억, 글의 소재가 된 숨기고픈 나의 비밀이 되었으니, 그건 그렇게 승화된 나의 여정 중 하나의 발자취인 것이다.
안녕, 어떤 토끼?
고백한 어떤 토끼는 그래도 나보다 용기 있는 아이. 더구나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토끼가 아니던가. 숨기만 했던 나도 이젠 나대로의 삶을 살고 있으니 어떤 토끼는 더 잘 살아갈 것이다. 어느 날 너만의 토끼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 또 우리 반갑게 인사하고 두 팔 벌려 안아보자. 안녕, 어떤 토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