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채널을 돌리다 우연찮게 프로그램 하나를 보게 됐다.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중간부터 봐서 앞에 내용은 뭔지도 몰랐다. 그저 할머니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장면에서 채널 돌리기를 멈췄다.
그림책을 읽고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신다. 도서관장이 오늘은 고추를 그려보자고 얘기한다. 고추 농사를 얼마나 지었는지, 고추가 어떻게 생겼는지, 농사지어서 무엇을 했는지 하나하나 물어보면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며 툭툭 대답하신다. 그 대답을 옆에서 도서관장은 받아 쓴다. 근데 신기하다. 할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들이 시가 되고 있었다. 이걸 제목을 뭘로 할까 하니까 옆에서 다른 할머니가 또 툭 던진다.
고추로 늙었지
눈물이 쏙 났다.
글 모르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그림책 프로그램을 언론에서 많이 봤었다. 그 결과물을 모아 책으로 출판한 경우도 여럿 보았다. 그런데도 TV를 통해 그 생생한 과정을 다시 보니 실로 너무 감동스러웠다. 100개도 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여러 순기능을 간직하며 지켜진 책마을 해리의 존재가 너무 대단하다. 그 과정을 만들기까지 지난한 세월을 어떻게 버텼을지 김대건 씨가 존경스럽다.
낮에는 농사짓던 할머니가 시인이 되고, 아이와 청년도 작가가 될 수 있는 곳.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던 꿈의 공간이 바로 고창에 있었다. 이대건 씨와 책마을 해리를 열렬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