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릴 때 말 탔었다며!”
술잔을 든 수안이 담긴 소주가 튈 정도로 거세게 잔을 내려두며 소리쳤다. 아무래도 취한 모양이다. 현실 파악이 빠른 편이었기에 포기는 쉬웠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동물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말’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전,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잠시 승마를 관두는 게 어떻냐며. 당연 싫다고 했다. 말을 탄다고 공부 안된다?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소리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을 알고 있긴 했다. 나에게 승마는 취미 밖에 될 수 없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승마가 비전이 없다. 게다가 당시 배꽃대 승마학과 사건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희월아! 너가! 체육교육과 수석인 거야!”
졸업. 그리고 수석. 백일천하와의 모든 경험들은 뼈마디에 새겨져 있었고, 함께한 모든 세월들은 근육의 세포가 되었다. 잊어가긴 했지만, 몸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소중했던 것은 어느새 세컨드가 되었고 그러다가 점점 밀려나는 것이다. 그간 소식을 듣긴 했다. 마장을 다닐 동안 마구간에 있었던 말들이 하나둘 병을 얻거나 수명을 다해서 죽었다.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않았다. 그러니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자연의 법칙이라는 순리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곳에 계시던 교관님들마저도 대부분 다른 승마장으로 가거나 관두셨다. 그러니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도 섣불리 갈 수가 없었다. 성장을 해가며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는 것을 싫어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나 자신을 돌아볼 때면 그저 그런 어른으로 성장한 것 같기도 했다.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희월아, 수능도 끝났겠다. 승마장이나 한번 가볼까? 솔깃했지만, 마다했다. 전부였던 세상을 떠나보낸, 그래서 버려진 나의 세상을 다시 볼 자신이 없었다. 그저 추억하는 것만으로 충만했다.
“박희월! 졸업축하해! 이제 임용준비하면 인생 폈다!”
“그것도 통과해야 하는 거지. 그게 얼마나 어려운데…”
“넌 한다 하면 뭐든지 하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면 한다는 마인드, 경험이 만들어낸 자존감이었다. 키가 작아도 백일이를 탈 수 있었고, 버틸 수 있었다. 결국 해내는 경험은 전부 백일천하가 만들어주었다. 나는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토륵. 하고 튀어나오는 투명한 알코올이 손거스러미를 스친다. 아, 따가. 왜 그럴 때가 있다. 갑자기 생각이 스치는 순간 말이다. 따가움이 특정 신경을 자극한 것인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승마장을 가봐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