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장을 다시 가 보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늦은 저녁, 귀가하는 도중 큰 도로에서 한 흰색 SUV 차량에 치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치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날 맡은 그 쌉쌀한 공기층 하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주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23이었다. 이건 모두 약 십사일 만에 깨어난 내가 이 순간 간호사로부터 전해 듣고 있는 말이다. 담당 의사는 왜인지, 내가 아닌 보호자와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님은 그저 회복이 먼저라며 미소 지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동공을 보았다. 그 떨림은 전에 본 적 있었다. 어릴 적, 애착 인형이 있었다. 이사를 하며 어딘가에 떨어진 것인지 애착 인형이 사라졌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의 동공, 딱 그 동공의 떨림이었다. 옅은 그리고 깊은. 말하길 꺼리고 회피하는 그런 것.
”음주 운전에 뺑소니예요. 요즘 워낙에 이슈여서 분명 죗값은 제대로 받을 거예요. 그것도 죗값이라 할 수도 없긴하지... 어휴... 음주운전은 살인이나 다름없다니까”
간호사는 마치 나의 일부가 된 마냥 열을 내는 것이다. 정작 나는 그러려니 했고...아니, 이렇게 깨어났고 멀쩡히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충분한 거 같은데. 내가 과할 정도로 낙관적인가. 아니면 간호사님이 지독하게 공감적인 것일까.
“희월씨, 워낙 오래 누워있어서 당분간 조심히 움직여야 할 거예요.“
”네“
”물리치료는 예약 잡아줄게요.“
”네“
”아 그리고 뼈는 다 잘 붙었다는 거 들었죠? 조금 회복되면 왼쪽 다리 보조기도 맞추면 될 것 같아요. 앞으로 보조기 차고 걷는 연습하는 게 좀 어려울 거예요. 그래도 요즘은 보조기가 워낙 잘 나와서 괜찮을...”
“네?”
몸에 서려있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누가 빨대를 꼽아 아주 큰 음압으로 빨아내듯 말이다. 발가락을 움직여보았다. 오른쪽. 가능. 아직 뻐근하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생각했다. 두려웠다. 왼발. 머릿속에 있는 왼발의 위치가 텅 비어있는 느낌에 예리한 무언가가 심장을 관통한다. 왜 몰랐을까. 아까 의사가 왼발을 찔렀을 때, 감각이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의사의 표정을 왜 보지 않았는가.
재빠르게 이불을 들추어 다리를 바라보았다.
“이상... 없는데?”
무서울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손을 가져가 꼬집어 보았다. 아. 너무 살짝 꼬집은 걸 거야. 그래서 살면서 가장 미웠던 아니, 미워질 사람을 떠올리며 꼬집어 본다. 상대는 날 이렇게 만든 음주 운전자.
신경 손상에 의한 하지마비였다. 체육교육과, 막 졸업한 전공이 난데없이 쓸모없어졌다. 이 순간이 되자 떠올랐다. 왜 체육교육과를 선택했는지. 언젠간 다시 승마할 날이 온다면, 그나마 몸이 예열되어 있을 수 있는 과가 몸을 쓰는 체육 관련 학과라는 이유에서였다. 부모님이 극구 반대를 했고, 겨우 찾은 합의점이 체육교육과. 아, 엄마 아빠 말 들을 걸... 한숨을 내쉬자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옅은 연기가 나온다.
어쩌면 연기가 더 많이 생겨서 눈 앞을 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환자복 주머니에 넣어둔 담뱃갑을 꺼냈다. 뜯지도 않은 것이었다. 얼마 전, 카페인의 효능에 대해 찾아보았다. 각성은 필요 없었다. 그러다가 연관검색어에 있는 ‘니코틴’을 발견한다. ‘도파민의 분비가 늘어나서 정신적 안정감을 주며 긴장감이 해소되는 일시적인 진정효과’ 솔깃했다. 게다가 해롭기까지 하니 금상첨화. 담뱃갑에 있는 혐오스러운 사진,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망가진 거 더 망가져도 되지 않을까.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켰다. 바람이 휘잉- 불자, 엄지 손가락의 옅은 살을 불길이 스친다. 아, 따가. 그러다 문득 그날의 엄지손가락 통증이 떠올랐다. 통증, 그리고 생각. 맞다. 백일천하 보러 가려고 했는데… 눈 앞을 가려줄 연기를 뱉어내었다. 콜록. 콜…록. 니코틴에 중독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메스껍기만 하다. 만일 이 메스꺼운 기분 때문에 가지고 있던 고통스러운 생각이 잊히는 것이라면 중독성 있다는 말에 한 표를 줄 것이다.
“희월아! 찾았잖아!”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수안이다. 요즘 따라 왜 이렇게 자주 오는 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 의사는 환자인 나와 상담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가족도 아니었고 친구인 수안을 부르는 것이었다. 또 무슨 말을 했을까. 최악의 상황이라 이제 어떤 말을 들어도 충격이 없는데, 의사는 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한 것일까. 차라리 시한부라는 처절한 말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뭐, 딱히 궁금하지는 않다.
“왜 왔어?”
“보고 싶어서 왔지”
수안이 웃으며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기다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는 담뱃갑까지 자연스럽게 들고 간다.
“우리 희월이 춥겠다.” 말갛게 있는 왼발을 보고는 수안이,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발을 감싸준다.
“아무 느낌도 안나, 의미 없는 거 하지 말고 목에 매 얼른”
수안이 싫다며 흥얼거리면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끈다. 선선했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다.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서 왼발을 움직여보았다. 사실,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 왼발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토록 치열했지만,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무도 모르는 치열함, 그것은 나의 존재가 부정되는 요소였다.
“구속됐데”
밑도 끝도 없는 서술어였지만, 나는 알아들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런다고 그 사람의 하지가 마비되는 건 아니잖아. 허무한 복수심. 고통은 오로지 나의 몫이니. 붉게 물든 낙엽 한 장이 무릎 위로 떨어진다. 이미 말라서 잎의 끝자락이 오므라져 있었다. 잎의 줄기를 잡고 엄지와 검지를 비벼 돌렸다. 그러다 부숴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