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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정 Mar 19. 2019

왜, 혼자, 살아요?


왜 혼자 사냐는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 이야기하면 결혼을 했거나, 가족과 함께 사는 친구들은 놀란다. ‘정말? 사람들이 그걸 궁금해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왜 혼자 사는지 묻고, 혼자 살지 않고 가족과 함께 살 때의 장점을 굳이 설명해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가족과 함께 살 때의 장점은 다음 세 가지다.   


1. 돈을 아낄 수 있다.

2. 가사 노동을 안 해도 된다.

3. 밤에 안 무섭다


이미 30년 동안 가족과 함께 살아본 나에게 다들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데,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노라면… 말을 줄이겠다.


혼자 산 지 2년이 되었다. 즉 전세 기간이 끝났다는 뜻이다. 왜 혼자 사냐는 질문으로 받는 스트레스 같은 건 전셋집 구하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질문을 하루에 열 개 정도 한 달을 받아야 전셋집 구하기 스트레스와 비슷해지려나. 계약이 끝나기 몇 달 전부터 시작도 하지 않은 전셋집 구하기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지금 살고 있는 이태원 집을 구해준 부동산 사장님을 길에서 만났다. 사장님을 만나자마자, 전셋집 이야기를 꺼냈다.


“저, 사장님! 저 전세 계약이 끝나서요. 집주인이 연장을 안 해준다고 하고…. 좋은 집 있으면 연락주세요.” 


자, 이 상황에서 부동산 사장님이 나에게 한 말은 놀랍게도, 

“집을 또 구해? 왜 시집을 안 갔어? 2년이나 있었잖아.”  


2년 전, 몇십만 원의 중개 수수료를 내고 전셋집을 구했는데, 나는 그게 전세 계약인 줄 알았지, 결혼 유예 연장 계약인 줄은 몰랐다. 부동산 사장님이 2년이나 결혼할 수 있는 기한을 줬는데, 내가 계약 내용을 오해했었나? 말문이 막힌 나는 대강 인사를 하고 헤어지면서 다신 저 부동산에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부동산 사장님을 2년 동안 얼마나 믿고 좋아했는데….’ 혼자 배신감에 휩싸여 유부녀 친구 C에게 울분을 토했다. C는 자기 동네로 이사를 오라며, 정말 믿고 맡길 수 있는 좋은 부동산을 소개해준다고 했다. 자기 동네 부동산 사장님은 그런 말을 할 분이 아니라며 안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온갖 ‘○방’ 사이트를 돌아 다니면서 내가 가진 돈으로는 이태원에서 전셋집을 구하지 못 하리라는 확신이 들 때쯤, 친구 동네 성수동에 가보기로 했다. 

과연, 부자 동네의 좋은 부동산은 간판부터 달랐다. 지하철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고, 들어가자마자 부동산 사장님이 교양 있는 말투로 나를 환영했다. 그러고는 물었다. 


“왜 혼자 구해요? 친구는 결혼했던데.”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C에게 충격을 안겨줄 수 있겠군. 너희 동네 부동산도 별 수 없다고! 친구가 결혼할 때 1+1으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곧 부동산에 도착한 친구는 집을 보러 이동하며 물었다. 


“어때? 사장님 너무 좋으시지? 그런 질문도 안 하시고.” 


“푸하하하하! 이미 했지롱! 네가 오기 전에!”      


친구 동네의 부동산 사장님을 만난 첫날은 친구의 기대를 배반하는 재미라도 있었다. 둘째 날, 첫날 본 집을 계약하겠다고 말하자마자 사장님은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했다. 부동산을 더 돌아다녀야 하는 귀찮음과 대출 가능한 돈을 저울질하다가 ‘알겠다’고 했다. 선계약금을 입금하겠다고 하자, 다시 연락이 왔다. 전세금을 또 올려달라는 말이었다. 마음에 드는 전셋집을 또 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비하면 그럴듯한 제안으로 들렸다. 다시 ‘알겠다’고 했다. 두 번째 전화에도 알겠다고 한 나의 담대함을 높이 샀는지, 세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집주인이 중국 출장을 가서 계좌번호를 모르니 계약금을 집주인 아내 통장으로 입금하라는 것. 이대로라면 네 번째 전화로는 그냥 지금 돈이 필요하니 몇천만 원만 부치라고 할 사람들이었다. 이후로 열 통이 넘는 전화. ‘부동산 믿고 입금하면 된다’, ‘우리도 보험이 있다’, ‘좋은 사람들이다’, ‘몇십 년간 이 동네만 산 사람이다’라는 연락을 받고, “제발 다시 연락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카톡으로 중국 출장 중이라 못 준다던 집주인의 통장 사본이 도착했다.     




자, 다음 동네로 떠나볼까.


세 번째로 탐방한 동네는 바로, 회사 근처였다. 처음에는 예산 초과가 예상되어 엄두도 내지 않았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몇몇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가격이 맞는 곳은 도저히 혼자 살 용기가 나지 않는 곳이었고, 살고 싶은 곳은 가격이 안 맞았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가격도 맞고 내 마음에도 맞는 집을 찾았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이런 집을 가까이에 두고 그동안 괜한 동네를 떠돌았다니. 헛것을 보는 게 아닌지 걱정되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도 보고 괜찮다고 하면 바로 계약을 하고 싶었다. 부동산에 엄마와 함께 보고 계약하겠다고 하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엄마가 도착하여 집을 둘러보고, 계약을 하려고 부동산에 앉으니 그제야 부동산 사장님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작은 문제가 있긴 한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사실 이 빌라가 미등록 건물입니다.”



돈을 내는 것도 나고, 집에 사는 것도 난데 하루 종일 아무 말이 없다가 엄마가 오자마자 미등록 무허가 건물임을 알려주다니.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부동산 사장님은 이게 얼마나 작고 사소한 문제인지를 설명했다. 집주인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이기 때문에 믿어도 된다는 말이었는데 법치국가에서 왜 혼자 법 없이 사는가. 나는 법대로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점점 설명이 길어지는 사장님을 보면서 그제야 왜 이 집이 나의 예산 범위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이태원도, 친구 동네도, 회사 근처도 아닌 곳에 집을 구했다. ○방 사이트에서 본 곳으로, 사진대로라면 매우 좋은 집이었는데, 중개 사이트에 있는 게 찜찜했다. 몇 달간 부동산을 순례하며 알게 된 진실은 ○방에 올라온 집이라면 ‘갈 데까지 간 집’이라는 점이었다. 굳이 거기까지 가서 뻔한 사실을 확인해야 할까. 하지만 전셋집이 나에게 올 순 없으니 내가 가야지.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동산을 찾았다. 부동산 실장님은 집을 둘러보는 동안 나에게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집은 놀랍게도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그대로였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부동산은 가장 중요한 진실을 끝까지 숨기는 곳이다. 실장님께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제발, 하자가 있으면 지금 말씀해주세요. 나중에 말씀하시지 마시고요. 지금 생각해보게요.”


실장님은 정말 아무 문제 없는 집이라고 했고, 그건 과연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살아본 바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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