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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연 Jul 25. 2018

자신있는 요리는 샐러드인데요.

샐러드를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칠걸.

 맛있는 천도복숭아를 들여온 날, 샐러드를 만들었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검은 비닐 봉지를 달랑달랑 손에 들고, 어떤 재료들을 어떻게 조합하는게 가장 좋을지 즐거운 고민을 하며 돌아왔다. 샐러드는 고려해야할 요소가 특히나 많지만, 그래서도 만드는 재미가 있는 음식.



언젠가 누군가 내게 가장 잘하는 요리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별 생각없이 던진 질문이었을텐데. 사고방식이 함수같아, 대충 넘기지를 못하고 잠시 고민해보고는 대답했다. 


저 샐러드를 잘해요.


 피식 터져 나온 웃음. 아니 요리를 좋아한다더니 잘하는 요리가 샐러드냐며, 좌중이 웃는다. 샐러드를 좋아하고 언제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기에, 왜 웃는지 나는 잠시 이해를 할수 없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집의 천도복숭아처럼, 샐러드는 이곳 저곳에서 천대받는 음식일때가 많았다. 자취하는 친구집에 모여 요리를 할 때에도, 하다못해 캠핑을 가도, 샐러드는 늘 요리를 못하는 친구가 담당했다. 한편, 고기집에 가면, ‘이 친구가 요리를 잘해. 불맛을 기가 막히게 살려’라며, 요리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 고기를 굽는다. 


 하지만, 샐러드는 고려해야할 점이 무척 많은, 참 어려운 요리다.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친다.

 샐러드를 만들때 나는 크게 세가지를 구상하고 작업에 돌입한다.

 첫번째, 전체적인 조합을 구상한다.

 우선, 한 그릇으로서 재료간의 맛과 식감 조합을 생각한다. 채소의 세계는 너무나 넓다. 종류도 많고, 한 종류의 채소에도 다양한 품종이 있고, 각기 다른 맛을 갖고 있다. 씁쓸한 맛을 가진 케일, 감칠맛이 일품인 양송이 버섯,달콤한 찰토마토와 달콤짭짤한 대저토마토 등. 이 채소들을 어떻게 조합시켜야 가장 어울리는 맛과 식감을 낼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심지어 채소만으로 끝나지 않고, 드레싱은 어떤 것이 어울릴지도 생각해야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천도복숭아와 케일로 샐러드를 만들때는, 새콤달콤한 천도복숭아를 메인 재료로 먼저 정하고, 새콤달콤한 맛을 살리면서도 디저트가 아닌, 식사에 어울리는 요리로 만들기 위해, 이 맛과 상반되는 씁쓸한 맛을 가진 케일을 매치했다.여기에 이 두가지 맛의 밸런스를 내기 위해 감칠맛을 가진 양송이버섯을 볶아 넣었다.

 한 그릇으로서의 조합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요즘에는 샐러드 한그릇으로 한끼를 해결할수 있는 샐러드카페도 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샐러드는 주로 다른 음식과 함께 먹는 요리이다. 때문에, 샐러드는 그 한 그릇으로서의 조합을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이 다음에 나올 다른 요리와 이 샐러드가 어울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한다.


 이렇게 전체적인 조합을 구상하고 나면, 두번째로 재료를 어떻게 조리할지에 대해 구상한다. 샐러드를 포함한 채소요리는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조리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아웃풋으로 완성된다. 쉽게는 채소를 어떻게 썰어야 맛이 어울리고, 먹기 편할지를 생각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채소의 조리는 수분조절을 어떻게 할것인가에서 정점을 찍는다. 최대한 수분을 제거하는 것이 이 채소와 샐러드를 잘 살려낼수 있을 것인지, 소금 혹은 식초에 절여 요리 전체에는 적당히 수분을 내면서도 채소의 식감은 더 아삭하게 살릴것인지, 원하는 수분감을 만들기 위해 드레싱은 버무려 낼것인지, 드레싱과 샐러드를 따로 낼 것인지 등. 샐러드는 맛을 즐기는 요리이기도 하지만, 식감을 즐기는 요리이기 때문에도 채소의 수분을 어떻게 다뤄 식감을 살릴것인지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이 점이 다른 요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샐러드가 어려운 요리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월도프 샐러드 (이른바, 사라다)는 채소에서 나오는 수분에 지지 않을 정도로 마요네즈를 듬뿍 사용한다. 사진에 사용된 마요네즈는 두유로 만든 비건 마요네즈.

 마지막으로 상차림을 구상한다. 어떤 그릇이 어울릴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샐러드는 어느 커트러리(숟가락, 젓가락, 포크 등)를 사용할까도 중요하다. 재료를 어떻게 조리했는가에 따라 먹기 편한 커트러리가 다르기 때문. 콩이 주된 재료라면 스푼이 어울릴수도 있을것이며, 숏파스타를 곁들인 파스타 샐러드라면 포크가 어울릴수도 있을것이다. 한편, 이번에 만든 샐러드처럼 재료를 채썰어 넣은 샐러드라면 젓가락이 어울릴수도 있다.

렌틸콩을 주재료로 사용한 샐러드에는 스푼을 낸다(왼쪽). 푸실리를 곁들인 파스타 샐러드는 포크로 먹는것이 좋다(오른쪽). 

 이렇게 샐러드는 미리 고려해야할 점도 많은 어려운 요리이다. 심지어 맛 뿐만 아니라 식감을 즐기는 요리이기도 때문에, 최고의 식감을 내기 위해 시간과 싸워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그 조합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나는 요리의 한 장르로 샐러드를 좋아한다. 고민을 하며 샐러드를 만들어 온 만큼 자랑스러운 레시피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예전부터 채소요리를 좋아했고, 식물성 재료만으로도 맛있게 식사를 할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채식을 결심할 때, 고기를 먹지 않는 삶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종종 나를 난감하게도 하지만, 여전히 내게 가장 자신있는 요리의 한가지는 샐러드다. 입맛을 돋구는 조연으로도, 건강한 한끼를 책임지는 주인공으로도 이 어려운 요리를 나는 나름 잘 뽑아낸다.

다음에도 기회가 있거든 그때는 조금 더 당당하게 대답해야겠다.


저, 샐러드를 진짜 맛있게 잘해요.



천도복숭아로 요리를 한 스토리는 이곳에

천도복숭아와 케일로 만든 샐러드 레시피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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