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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Mar 01. 2020

[문제해결] 원인 Cause

에세이. 조미진 작가. 20170312.


비가 내린 아침은 산뜻합니다. 비가 내린 아침은 말끔하지요. 그런데 봄비일까요. 아니면 겨울비 일까요. 깔끔한 아침에 유일하게 이것만이 헷갈리네요.


비가 내린 어제, 창밖 풍경은 흐릿흐릿했습니다. 빗방울만이 선명했던 것 같아요. 세상 모든 것이 촉촉하니 마음도 따라 촉촉해집니다. 이 마음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합니다.


박혜라 화가가 이 마음을 받아줍니다. 화가는 화실 창으로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봅니다. 좀 전까지 팽팽하던 삶들이 순식간에 느슨해집니다. 느슨한 것이 싫었을까요. 비 오는 것이 싫었을까요. 창은 뿌옇게 수를 놓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비를 바라보는 사람과 비를 맞이하는 사람 간 경계가 생긴 듯합니다.


<박혜라.거리에서;50cm X 60.6cm,Oil on Canvas.herapark.cafe24.com>



거리에 있는 사람이 화가를 본다면 역시 뿌옇겠죠. 이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납니다. 비는 공평하게 내리는데 서로를 흐릿흐릿하게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화실에 있는 화가는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까요. 거리에 있는 사람은 화실에 있는 화가에게 무슨 말을 할까요. 흐릿흐릿한 창을 두고 말입니다. 사뭇 긴장감도 생깁니다.


박혜라 화가의 ‘거리에서’ 그림을 보며 든 생각은 이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쓰지 못 했던 문제 해결에세이 '원인’(原因, Cause) 편이 떠올랐습니다. 비가 오고, 박혜라 화가의 그림을 본 것이 ‘원인’ 편을 쓰게 한 필연처럼 느껴졌습니다.


원인은 ‘발생한 사건의 근거’ 입니다. 근거는 곧 원인이고 사건은 결과입니다. ‘원인-결과’ 간의 관계를 ‘인과관계’(因果關係)라고 합니다. 오래전에 뉴턴(Isaac Newton)은 ‘동일한 조건(원인)에서 동일한 결과가 생긴다’고 했지만, '한 결과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는 밀(John Stuart Mill)의 주장을 문제 해결에서는 더 쳐줍니다. 흄(David Hum)이란 학자는 이런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는 여기서는 빼겠습니다.


원인은 다시 '주요한 원인'과 '부차적 원인'으로 구분합니다. 주요한 원인을 ‘필연적’(必然的·모호하지 않고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라 하고, 부차적인 원인은 ‘우연’(偶然)이라고 부릅니다. 우연은 통상 ‘예기치 않은 사건’을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서 우연은 주요한 원인에 도달하기 위한 ‘출발선’ 정도로 이해하면 될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필연은 반드시 우연히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연을 떼 내면 필연은 숙명론(宿命論)에 빠져 엑스(X) 파일이 되고 말 겁니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리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삶은 고통을 놓을 수 없는 도시에 사는 것과 같을 겁니다.  


우연히 내린 비는 거리 풍경을 바꿔 놓았고, 화가는 비가 만든 풍경을 바라봅니다. 흐릿흐릿한 거리를 가만둘 수 없었겠죠. 그래서 화가는 붓을 들고 비를 따라다닙니다. 붓질이 계속될수록 그림은 점차 필연이 되어갑니다. 화가가 긴장을 풀고 먼저 말을 합니다. "붓질이 끝나면 산뜻하고 말끔한 아침이 될 겁니다."


그러고 보니 화가의 그림은 고통을 씻어낸 도시를 맞이하고 싶은 소망아닐까요. 우연히 내린 비에 화가의 그림은 소망을 담은 필연적 결과였을겁니다. 작가의 소망이라 여기니 작품을 다시 봅니다. 빗방울이 선명한 것이 반드시 다가올 봄의 전주곡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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