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8개월간의 수영기록
여름이 다가오면 전력으로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해진다. 해변에서 비키니까지는 못 입어도 노출이 많은 계절이니만큼 더 날씬해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몸을 만들기 전까지는 워터파크에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물놀이는 여름방학 필수코스가 되어버렸다. 2016년, 첫 육아휴직을 하던 해에는 유독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 큰 애를 임신하고 23kg이나 늘어버린 몸무게가 아이를 낳고도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수영장에 등록했다.
수영 첫날. 살 빼러 찾아간 곳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내 몸을 보여줘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탈의실, 샤워실에서 이미 뱃살이 공개된 채 수영장 물속에 들어갔다. ‘제발 저 여자 옆에는 서지 않아야지…’라고 마음속으로 빌었지만 결국 늘씬하고 매끄러운 각선미를 자랑하는 모델 같은 회원 옆에 서게 되었다. 물속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이 무색하게 초급반인 우리는 물이 무릎까지 오는 유아 풀장에서 수영을 배웠다.
발차기와 물에 뜨기 등 기본적인 동작을 익혔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특강으로 한 번 배운 적이 있던 터라 기초반 강습은 나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나의 힘찬 발차기에 강사도 만족스러워했다. 손바닥만 한 유아 풀장에서 몇 바퀴나 돌았다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지막으로 강사는 가볍게 자기소개를 하며 왜 수영장에 오게 되었는지 한 명씩 이야기하라고 했다. 이젠 비루한 몸뚱이보다 동그란 물안경 자국이 선명히 새겨진 불타는 고구마가 된 얼굴이 더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살 뺄려고요오…….”
“회원님, 수영으로는 절대 살 못 빼요. 물에만 들어가 있어도 체온유지 하느라 칼로리 소모가 엄청나거든요. 그러면 집에 가서 밥도 엄청나게 먹게 되죠. 그래서 제가 강습하면서 수영으로 살 뺀 사람을 거의 못 봤습니다.”
강사의 호언장담은 오히려 나의 다이어트 의지를 더욱 불태우는 자극제가 되었다.
매일 새벽 여섯 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 가기 전, 후 수영 관련 유튜브를 보며 수영 동작을 이미지 트레이닝하고 주말마다 개인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드디어 유아 풀장에서 두 달 만에 벗어나 25m 레인에서 강습받았다. 각고의 노력이 빛을 발하였는지 중급반 ‘1번 회원’이 되었다. 비로소 노은동 물방개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수영강습 때 수영하는 순서로 은근히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보통은 강사가 자리를 지정해 준다. 한 명씩 한 줄로 출발하게 되는데 앞사람 수영 속도가 나보다 느리면 중간에서 샌드위치가 되어버려 멈추어 서거나 앞사람 발꿈치를 터치하는 일이 생긴다. 뒷사람에게 발꿈치를 터치당한다는 것은 꽤 모욕적인 일로 자리 교체가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수영장에서도 이른바 텃세가 존재하여 처음부터 함께한 멤버가 아닌 새로 들어온 회원에게 앞자리를 내주지 않으려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 와중에 1번의 의미는 물살을 가르며 내 속도 그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자유형, 배영까지는 단연코 나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러나 평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급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좀 가요. 왜 계속 제자리에 있어요?”
강사의 채근에도 제자리를 맴도는 연못 위의 작은 물방개. 평영을 배우기 시작하고 나서 개구리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뒷다리를 접었다가 펴는 자태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보다 평영이 훨씬 빠른 회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평영 하는 순서가 오면 눈물을 머금고 뒷사람들에게 먼저 가라고 자리를 내주었다.
수영을 시작한 지 8개월째. 그동안 몸무게는 8킬로그램 가까이 빠졌다. 누구보다 빨리 나의 몸매 변화를 목도한 다른 회원들에게 반쪽이 되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오리발 수업에, 접영까지 배우면서 한참 재미있어지려는 찰나. 비 오는 날 킥보드 타고 수영장에 가다가 미끄러지며 넘어져 발목을 다쳐 수영을 한동안 쉬게 되었다. 그러다가 둘째가 생기면서 수영은 그만두고 몸무게는 다시 하루가 다르게 불어만 갔다.
둘째 낳고 다시 찾은 수영장. 새벽 5시 반에는 최고 실력자 반밖에 없었지만, 직장에 복직하면서 그때밖에 시간이 안 되어 그대로 합류하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에 수영을 하기도 했고 어마어마한 실력 차이로 꼴찌로 붙어서 간신히 따라갔다. 남들 두세 바퀴 더 돌 때 도저히 못 따라가서 걸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수영이 그렇게 안 돼?”
날쌘 물개처럼 헤엄치고 먼저 제자리에 돌아온 1번 아저씨가 쉬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쉬기만 해서는 절대로 늘지 않는다고 다그쳤다. 남몰래 1번 자리 탈환을 꿈꾸며 꼴찌 자리에서 허우적대다가 남편이 새벽 운동을 시작하면서 누군가 한 명은 집에서 아이를 봐야 했기에 나는 아예 수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잘하는 사람들 틈에서 간신히 따라갔던 두 번째는 수영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는데 돌이켜보니 꼴찌 물방개의 삶도 나쁘진 않았다. 조금만 노력해도 칭찬이 뒤따랐다. 도저히 못 따라갈 때는 천천히 걸어오면서 다른 회원들의 수영하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물 잡기’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실제로 물을 손으로 잡는 게 아니라 물을 느끼면서 손에 쥐고 몸을 그 지점 너머로 끌어당기는 것을 말한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수영도 역시 힘을 빼야 한다. 물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야 앞으로 나아간다. 한참을 허우적거려도 앞으로 조금도 나아가지 않을 때,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물을 느끼고 물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면 전진할 수 있다. 때로는 힘찬 발차기가 전진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수영을 배우며 일 번 자리에도, 꼴찌 자리에도 서보면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 뜨거운 여름, 시원한 수영장에 풍덩 뛰어들어 물살을 가르며 유유자적하게 헤엄치고 싶다. 다시 한번 뜨거운 수영장의 열기를 느끼러 수영장에 등록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