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까지 오던 머리를 잘랐다

by 눈항아리

허리까지 오던 머리를 싹둑 잘랐다. 나는 숏커트로 잘랐다. 자주 안 가는 미용실인데 벌써 세 번이나 가서 커트머리를 잘랐다. 적어도 육 개월을 됐다는 소리다.


허리까지 오던 머리를 싹둑 잘랐다. 복실이 딸아이는 단발로 잘랐다. 복실이는 며칠 전에 잘랐다. 딸아이의 입이 댓 발이나 나왔다. 얼굴은 풍선처럼 부풀었다. 단발로 자르니 안 그래도 둥근 얼굴이 더 호빵 같아졌다. 아빠와 오빠 셋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복실이는 장발이 잘 어울려.”

“머리가 짧아지니까 얼굴이 커 보인다.”


짧아진 머리를 연신 손으로 매만지면서 아이는 풀이 팍 죽었다.


정말 오랜만에 같이 간 미용실이었다. 머리 길이가 허리까지 길어지는 시간 동안 미용실에 안 갔으니 말이다. 너무 짧게 잘랐나... 나는 더 짧은데? 나는 머리 잘라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머리카락 길고 짧은 게 뭐라고.


아이는 열 살이다. 긴 머리를 고수해서 힘겹게 머리 감기를 하고 있다. 머리 감는데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다. 드라이는 또 얼마나 오래 걸리던가. 이제 다 큰 언니가 됐다고 혼자 머리를 말릴 수 있게 되면서 오빠들 누구도 머리를 안 말려준다. 대신 딸아이의 머리 도우미 역할을 내가 맡게 되었다. 바쁘면 붙어서 드라이기 두 개를 들이대고 말려야 한다. 나는 팔도 아프고 딸애는 혼자 감당이 안 되는 긴 머리. 언제든 잘라야 하긴 했는데 너무 짧게 잘랐나.


머리를 자르는 내내 얼굴을 풍선처럼 부풀리고 눈을 감고 있던 아이. 껑충하게 짧아진 머리를 손으로 그러모아 쥐어보더니 머리가 안 묶인다고 또 불만을 토로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똑 떨굴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잘라버린 머리를 다시 붙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금방 자랄 거야. 머리 감는 연습하는 동안 반년만 이러고 있자. 봄이면 다시 머리 묶을 수 있어.”


어르고 달래보아도 아이의 얼굴은 시무룩하기만 했다.


‘봄은 대체 언제 오나요? ’

아이의 원망 어린 눈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를 열심히 말했다. 정말 귀여워서 아기 때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아기 때는 짧은 머리가 정말 귀엽고 예뻤다. 바가지 머리가 참 잘 어울렸는데... )


딸아이의 ‘머리 독립’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을 하나 넘었을 뿐이다. 독립의 길은 험난하다.


문제는 단발머리를 한다고 손이 안 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들들은 머리만 휙 말리면 그만인데 여자 아이는 다르다. 머리를 말리고 삐침 머리 없이 가지런하게 빗질을 해주고 드라이를 해줘야 한다. 난 편하게 살자고 아들과 같은 스타일로 살며 감고 휙 말리고 끝인데 말이다. 대체 딸아이의 ‘머리 독립’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말이다.


허리까지 오던 머리를 싹둑 잘랐다. 없어진 뒷머리가 휑하다. 내 머리는 괜찮은데 없어진 아이의 긴 머리카락이 왠지 더 휑하다. 그러나 어느새 어색함에서 익숙함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어깨선을 따라 바깥으로 뻗어나가던 머리가 며칠의 노력으로 다소곳하게 안쪽으로 말려들어가고 있다.


독립은 스스로 이루어야 하지만 아이의 독립은 그렇지 않다. 홀로 감내해야 하는 아픔이 있는 것은 맞지만 스스로 설 때까지 도우미 역할은 부모의 몫이다. 딸아 이제 머리는 스스로, 네 독립은 네 손으로.


나는 오늘 아침에도 딸아이의 전용 미용사로 예약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은 드라이 빗을 하나 장만할 생각이다. 미용실에서 본 두툼한 것으로 사야지. 아이의 독립을 원하면서도 아이의 독립을 막는 가장 큰 적은 바로 나 인지도 모른다. 머리에 큰 머리핀 하나를 장식하고 싶은 마음도 가끔 솟구친다. 핑크색 커다란 리본. 이제는 그런 머리핀은 안 달려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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