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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을 잃을 정도로

by 눈항아리 Feb 01. 2025

다 말라비틀어져 먹을 수 없는 찬밥을 만들지 말자. 그렇게 다짐했건만, 오늘도 잊고야 만 기억.


잊힌 기억은 누군가에게 큰 웃음을 주곤 한다. 가장 큰 수혜자는 남편이다. 참으로 어수룩한 부인을 둔 남편은 나의 행동을 목격하고 박장 대소하였다. 개그 쇼프로를 본 것처럼 생각이 날 때마다 웃었다. 어이없었으나 나도 마구 웃음을 참았다.



오늘의 원흉은 남편이다. 3시에서 4시가 넘어가는 한가한 시간.


“까까 사 올까? ”


‘혼자 다 드시오. 나는 뱃살 걱정이 많소. ’

이렇게 말해야 하지만 끄덕이는 나의 고개.


휑하니 나간 남편은 금방 20리터 재활용봉투에 까까를 가득 담아왔다.


‘메뉴 하나만 만들고 얼른 과자를 먹으러 가야지. ’

나는 그 생각만 했던 것일까.  


들어온 주문은 생강차였다. 투명 잔에 생강청을 담고 뜨거운 포트의 물을 붓고 찻숟가락을 장착한 다음 쟁반을 살포시 들고 고객님께 출동했다. 사뿐한 발걸음을 좀 보시라. 새색시 저리 가라 귀부인 포스로 우아하게 걷는다. 그런데 왠지 평소와 길이 다르다. 쟁반 높이의 장애물 등장. 전문가답게 팔을 어깨 높이로 올렸다. 이런 장애물이 있었던가? 언제 새로 생긴 장애물인지... 과자 봉지를 뜯어 펼쳐놓고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까까를 입에 넣는 남편의 얼굴을 보자 ‘앗차’ 싶었다. 왜 고객님에게 갈 생강차를 들고 가는데 남편의 얼굴이 보이는 것일까. 머리를 강타하는 깨달음. ’ 생강차를 고객님께! ‘


남편은 껄껄껄 웃고 난리가 났다. 나도 상황상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에 환하게 번지는 웃음을 참지 못해 입을 앙 다물었다. 욱실거리는 볼살을 겨우 내리누르며 돌아서서 생강차를 주문한 손님에게 고이 가져다 드렸다. 웃느라 맛있게 드시라는 말도 못 하고 카운터에 쟁반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가서 씩씩 거렸다.


맛나게 먹었다.  

꽃게랑 한 봉지와 자갈치 한 봉지.

과자가 그렇게 좋더냐.

갈 길을 잃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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