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소파에 앉았다. 소파는 냉랭하다. 고요한 시간을 빼앗긴 소파는 차갑기 그지없다. 잘 달래고 옆에 앉아 있으면 소파도 따뜻함을 금방 알게 될 거다. 온기는 서로 옆에서 부대끼며 전해지는 법이다. 금방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담요를 덮었다.
몸속으로 파고든 냉기가 남아 아직도 엉덩이가 얼얼하다. 찬 기운이 한 번씩 돌 때마다 한기가 든다. 코끝이 차갑다. 담요를 못 덮은 팔이 시리다. 겨울의 거실은 어둡고 춥다. 세탁기, 건조기 소리에 시끄럽기까지 하다. 이른 새벽이라 불을 켜기는 힘들다. 잠을 잘 못 자는 남편이 깰 수도 있다. 조금 더 자라고 내 책상을 잠시 양보하고 소파에 앉은 것이다. 그런데 세탁기 소리가 영 거슬린다. 얼마나 우렁차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잘 깨는 남편도 세탁기 소리에는 반응이 없다. 다행이다.
오랜만에 새벽 기상을 하기로 했다. 늦은 퇴근 때문에 바뀐 일상이었다. 매일 7시가 넘어 일어나던 기상 시간을 당길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나는 걱정근심투성이 아니었던가. 유자 걱정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다른 많은 걱정으로 차곡차곡 채워져 새벽 기상 저절로 되었다.
어릴 적 새벽잠 못 주무시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새벽의 소파는 별생각을 다 이끌어낸다. 푸근하다 못해 이제는 따뜻해서 그런가 보다. 좀 있으면 편안해서 잠이 올 것을 안다. 조금만 앉아있다 아침의 빨래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겠다. 나 대신 건조기에서 갓 나온 따끈한 빨래가 다시 소파에게 온기를 전해줄 거다.
새벽의 차디찬 소파에게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새벽의 소파는 다시 나에게 온기를 돌려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앉아 세탁의 순환이라는 음악을 들으며 쨍한 가로등 불빛 아래 펼쳐진 정지된 마당을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