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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새벽은 다이내믹하다

by 눈항아리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눈발이 거세지자 남편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큰 아이 둘도 아빠를 따라 올라갔다. 무거운 습설은 옥상의 적이다.


마당에 불을 켜니 눈이 엄청 내리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오려나 보다. 나도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복실이와 달복이는 잠옷 바람으로 따라나선다.


아이들 잠바를 챙겨 입히고 방수되는 바지를 찾아 입히고 스키 장갑을 끼운 다음 부츠를 신겼다. 신나게 마당으로 달려 나간다.


새벽 1시다.


달복이와 복실이가 눈을 굴린다. 금세 커진 눈덩이는 무거운가 보다. 돌덩이라고 한다. 들어 보더니 포기하고 계속 굴리고 다닌다. 금방 눈사람 몸이 완성되었다. 달복이 오빠는 몸을 만들고 복실이 동생은 얼굴을 만들었다. 각자가 만든 눈덩이에 앉아 쉰다. 둘이 힘을 합해 눈사람 얼굴을 들어 올려 붙였다. 머리가 떨어질까 걱정인가 보다. 고정하느라 눈을 갖다 덕지덕지 붙인 다음 아름다운 몸매를 위해 다듬어 준다. 장갑이 닳도록 문질러 준다.


매끈한 눈사람 옆에 선 남매는 눈을 맞아 눈사람이 되었다. 눈사람이 된 남매는 서로의 머리와 어깨의 눈을 털어준다. 지키고 선 나는 손발이 시리다. 눈발이 지붕 있는 곳까지 들이친다. 내 팔에도, 모자에도 눈이 쌓인다.


춥다, 들어가자. 얘들아!

아이들은 귀를 막았다. 눈사람을 다 만든 복실이와 달복이는 새벽의 눈싸움을 한다.


지난번 첫눈이 내리던 날도 밤이었다. 아침에 놀자 했는데, 잠자고 일어났더니 눈이 다 녹았다. 만져보지도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사라지고만 첫눈을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겨우내 하염없이 눈을 기다린 걸 알기에 나는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언 손을 녹이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이들을 기다리다 지쳐 집으로 먼저 들어와 거실 창을 활짝 열었다. 한참 후 아이들을 불렀다. 현관을 향하던 아이들은 계단을 총총 다시 내려간다. 차에 쌓인 눈을 쓸어내린다. 차랑 한판 씨름도 한다.


콧노래를 부른다. 눈사람을 하나 더 만드는 건가, 바쁜지 불러도 대답이 없다. 눈놀이에 푹 빠졌다. 안방에서 장난감 놀이를 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앉아서 누워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안 들어온다.


다 만든 눈사람 얼굴을 바닥으로 내린다. 반이 쪼개졌다. 새로 만든 눈덩이를 몸 위에 올렸다. 깨진 머리를 손본다. 3단 눈사람 제작 중이다.


3단 눈사람 위에 복실이 얼굴, 달복이 얼굴을 놓고 포즈를 취한다.


새벽 2시다.


달복이는 발 한 쪽이 다 젖었고, 복실이는 머리가 땀에 푹 젖었다.


좋단다.


동심을 지켜보는 늙은 나는 손발이 시렸다. 기다림이 지루했다. 그래도 아이들의 동심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들의 동심의 세계가 부럽기만 하다. 나도 눈밭에서 굴러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밤사이 눈이 안 그치면 아침엔 옥상에 한 번 더 올라가 눈을 쳐야 한다. 스노타이어를 단 차는 시동이 안 걸려 아침에 점프를 시켜야 한단다. 그전에 파묻힌 내 차를 구출해 시동을 걸어야 하는데 잘할 수 있겠지? 남편과 나는 출근 작전을 짜고 있다.


눈 내리는 새벽, 우리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다이내믹하다.



기상청은 강원 영동에 최고 70센티미터 폭설을 예고했다.


눈이 펑펑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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