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21분이었다.
열 살 복실이가 말했다.
“나는 왜 놀지도 못하고 매일 바쁘기만 해요? 친구집에 놀러도 가고 싶고, 집에 와서도 자유롭게 놀고 싶어요. 우린 사는 게 왜 항상 틈이 없어요? 힐링도 좀 하면서 살고 싶어요. ”
내가 보기에 아이는 종일 노는 것 같으나 아이도 하루라는 거대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짧은 공부를 했다. 오랜만에 수학 문제를 풀었다. 그 외 저녁 시간은 통으로 자유시간이었다.
아이에게 ‘놀다’의 의미는 무얼까? 복실이는 아직 놀이터에 나가고 싶어 한다. 친구집에 놀러 가고 싶어 한다. 아이에게 ‘놀기’의 의미는 활동하는 것일까?
“복실아 그래서 뭘 하고 싶어? ”
“집에 와서도 놀고 싶어요. 그래서 말인데 게임 10분만 하고 자면 안 되나요? ”
그러면서 배시시 웃는다. 밤 11시 21분, ‘놀기’를 간절히 원하는 아이의 얼굴이 해맑기만 하다.
아이는 집에서 쉬기를 원한다. 집에서 굴러다니고 싶어 한다. 집에서 쉬면 더 잘 쉰 것 같은가? 이상하게도 가게에서 푹 쉬고 왔지만 집에 오면 아이들은 더 논 다음 자고 싶어 한다.
우리는 너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다. 매일 밤 10가 넘어 집에 온다. 나는 마구 감기는 눈을 데리고, 아픈 팔을 데리고 아이들을 독려하며 빨래를 갠다. 복실이는 빨래도 다 개고도 에너지가 넘친다.
그래 에너지 탓이겠지. 아직 방전이 안 되어 그런 것이겠지. 오늘은 운동 좀 시켜야 할까.
열 살 아이의 입에서 쉼, 힐링이라는 말이 나왔다. 게임 생각이 나서 그런 말을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에게 집이라는 안정된 공간에서 충분한 ‘쉼’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늦은 밤에도 게임을 하고 싶어 아이가 그냥 내뱉은 말일 수도 있다. 월화수목 계속 게임을 참다 참다 엄마가 허술한 틈을 타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열 살 복실이의 입에서 나온 ‘힐링’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쉼의 의미를 다시 묻게 했다.
쉼이 뭐지? 우리 너무 쉬지 않고 사나? 아이들을 너무 몰아치는 것은 아닌가? 나는 아이에게 답을 내 놓아야만 한다. 이렇게 풀기 힘든 문제들이 종종 나온다. 어려운 숙제를 내준 복실이를 오늘 열심히 놀려줘야겠다.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주말은 게임의 시간이다.
게임이 쉼인가, 놀이인가는 좀 더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