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나는

<거실에 살다> 중

by 눈항아리

거실 바닥은 평화롭습니다.

어둠과 정적이 내려앉은 새벽

차분한 가운데 살포시 먼지가 앉아 있습니다.



발걸음 사뿐히 지나갈 때마다

제 발이 만드는 길을 따라

먼지가

사방 위로 솟구치며 나풀거립니다.



아침은 더욱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밤새 내려앉은 하루 묵은 먼지들이

묵직하게 저 바닥으로

내려와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 슬리퍼를 신고

쭉쭉 밀었다면 거실 바닥에

먼지 사이를 통과하는

고속도로를 놓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혹은 커다란 광장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요.

과연 그럴까요?

먼지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까요?



먼지가 보이나요?

아니요.

먼지의 존재가 느껴지나요?

전혀요.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먼지입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닦아내지 않는다면

비로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니

까만색이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무슨

색이든 괜찮습니다.



당장

그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움직이세요.

걸레를 들고 바닥을 훔치세요.

흰색이라면 더욱 그 존재를

확인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지금은

그 존재를 확인하고 싶지 않다고요?

몇 날며칠 그냥 두세요.

절대 흔들지 말고 움직이게 두지 말고 그냥요.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검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바닥을 책상을 선반 위를

스치듯 쓸어 보세요.

손가락을 뒤집어 확인해 보세요.

세월의 힘으로 뭉쳐진

먼지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저희들끼리 함께 있을 때

존재감이 더욱 뚜렷해지는 먼지입니다.

저는 함께하고 싶지 않은 먼지입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먼지입니다.



오늘도 먼지와 사투를 벌이는 모든 주부님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먼지가 휘날리며 콧속으로 들어가

호흡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니

마스크 방패를 꼭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이기는 싸움

파이팅입니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우리의 전투는 빛납니다.

반짝이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계속됩니다.


밤의 거리에서도

활짝 핀 꽃이 있었습니다.

은은한 조명에 끌려가

야밤에 산책하며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저런 보름달 같은 인공조명의 도움이라도 받아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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