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퇴사자의 배부른 투정일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이라는 단어 자체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다 어우르는 중립적인 단어일 텐데, 어쩐 일인지 나는 그것의 의미를 '피곤하고 곤란한 일'로만 받아들인 모양이다.
10년 간 치열하게 일한 회사를 스스로 졸업하고 나와, 여기저기서 살아보고 작은 가게 하나를 창업한 것 이외에는 딱히 한 일이 없다. 그 가게마저 무인가게라 내 손을 크게 타지 않는다. 별다른 일을 하지 않으니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는 지극히 당연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흘러가고 있다.
물론, 이 평화로운 일상이 싫지만은 않다. 충분히 자고, 제 손으로 밥을 해 먹고, 매일 운동을 하고, 또 책을 많이 읽는 삶은 어느 모로 봐도 참 괜찮은 삶이다. 물론 책을 읽는 시간보다 하릴없이 핸드폰을 보며 죽이는 시간이 더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매일의 평화로움은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일궈낸 나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팔자 좋은 삶을 스스로에게 선물 한 나. 잘했어 짜식..??)
하지만 나에게는 필연적인 과제가 남아 있었다. 평생 하고 싶은 나의 새로운 업을 찾아내야만 한다. 말하자면 작지만 경제적 자유를 이뤄낸 나에게 새로운 인생이 다시 주어진 것인데, 새로운 인생을 다시 일구어 보려니 이 새하얀 백지가 좀 부담스럽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은 사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의미였던가?
내가 해 볼 수 있는, 혹은 해보고 싶은 새로운 일들에 대한 궁리는 퇴사 이후 쉬지 않고 진행 중이지만, 그 궁리들은 가장 강력한 상대에 맥없이 엎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귀찮음이라는 큰 산과 굳이라는 깊은 수렁이다.
잠깐이나마 반짝이던 새로운 일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것을 굳이 꼭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만나면 즉시 그 빛을 잃었다. 세상사에 적당히 지치고 인간에도 질린 나에게 고통을 이겨내고서도 꼭 해야 하는 일은 정녕 없는 것일까. 특히 다년간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사람 상대에 지친 나이기에 이와 관련된 일은 굳이 피하고 싶었는데, 세상에 사람과 부대끼지 않는 일이란 또 거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새로운 일에 대한 내 고민은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도돌이표를 찍고 있었다. 이쯤 되니 그냥 별일 없이 조용히 사는 게 답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 어쩌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맞지 않은 일을 버텨왔을까? 기억이 희미하다. 옛 다이어리를 찾아봐야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