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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Apr 05. 2020

아기새 두 마리 맞겠지?

아빠 새가 지켜주는 든든한 둥지

의도치 않게 어미새를 놀라게 한 지 이 주가 지났다.

저번 글 참고(생명엔 관심과 무관심이 다 필요한 법).


그동안 한 번씩 밖을 내다보면 대부분 어미새 혼자 둥지에 앉아 알을 품고 있었다. 아주 가끔 아빠 새가 둥지 옆에 같이 있었다. 그럴 때면 어미새의 자세가 조금 편해 보였다.


이 주가 지난 오늘 우연히 둥지 쪽을 보니 어미새가 보이지 않았다. 웬일로 자리를 비웠을까 궁금해하며 고개를 돌리자 아빠 새가 베란다 난간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둥지 속을 보고 싶어 의자를 들고 나오자 조금 쳐다보더니 근처 침엽수에 날아가 앉았다. 불안해할 것 같아 둥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의자를 두고 올라가 줌을 당겨 사진을 찍었다. 키가 모자라서 손만 머리 위로 뻗었기에 사진을 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쓸데없이 미적거리면 새가 더 불안해할까 봐 일단 의자에서 내려와 재빠르게 집으로 들어왔다.


거실에서 사진을 확대해서 둥지 속을 볼 수 있었다. 알은 보이지 않았고 우중충한 짙은 색 오물 덩어리 같은 것이 두 개 보였다. 아무리 열심히 보아도 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처음엔 부화에 실패한 것인가, 암컷이 배설물을 둥지에 모아두었나 했다. 나중에야 이것이 새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물 관련 영상에서 제비 새끼가 짹짹거리는 것만 기억에 남아 새끼들은 늘 시끄럽게 우는 줄 알았는데 조용하다. 그러고 보니 아기새는 털이 적고 빨갰던 것 같은데 사진 속에는 털이 덥수룩하다. 부화한 지 제법 되었는데 우리가 몰랐던 것일까?


궁금증만 가득 남기고 날이 저물었다. 내일이 되면 또 창밖을 훔쳐보게 되겠지. 새 가족 덕분에 매일 하루 한 번 이상 창문을 통해 둥지를 보고, 그 덕에 하늘을 본다. 구름 한 점 없는 싱그러운 4월 하늘이 아름답다는 것을 덕분에 알고 지낸다. 사회적 격리로 집에서만 지내는 집순이에게 이런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 준 새 가족이 새삼 고맙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생각할 겨를 없이 생명을 걸고 자리를 지키시는 전 세계 의료진들께 수시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빨리 이 사태가 방향이 잡히면 좋겠다.



사진으로 보는 둥지 모습 변천사



2020.03.21. 17:00  어미새를 놀래킨 날


2020.03.21. 21:30  잠시 자리 비운틈에 찍은 둥지. 새 알 2개


2020.03.22. 10:00  아빠새가 든든하게 지켜주어 그런지 좀 편해보이는 어미새


2020.03.24. 10:25  어미새 혼자 경계 중


2020.03.24. 14:00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어미새


2020.03.31. 16:40  아빼새 오신 날


2020.04.04. 18:00  어미새가 둥지 비운 동안 경계 중
2020.04.04. 18:00  새끼새로 생각되는 털뭉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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