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교를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과론적 세계관이다. 어떤 원인이 있었기에 결과가 생기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생겨 다음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 이러한 세계관에 입각해서 세상을 바라보면 화낼 일이 별로 없다. 지금 거지같이 보이는 사건도 그저 어떤 원인에 의해 촉발된 결과에 불과한 것이고, 지금 이러한 일이 미래에 벌어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잘 하면 된다는 심플한 마인드로 살기 좋다.
나에게 있어 인과론적 사고관은 원형(Circle)의 느낌을 준다.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것이 마치 원과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에 '~해야 해'라는 사고관은 직선적인 느낌을 준다. 전자는 시작과 끝이 없기에 내가 정하는 곳을 시작삼아 살기 좋고, 후자는 항상 어떤 지향점이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내기 좋기는 하지만 현재에 다소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이쪽 계열로 깨달으신 분의 대장이 부처님이시겠고. 부처님 제자 중에는 이름난 분들도 많다. 그 분들은 10대 제자라고 불린다. (찾아보고 설명을 읽으니 다들 한 가닥 하시는 분들이시다 ㄷㄷㄷ) 그 중에 '천안통(天眼通)'이 있다는 분이 계신데, 그 분 이름이 '아나율(阿那律, Aniruddha)'이라고 한다. 그는 장님이었으나 천안통으로 인해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멀리 있는 것이나 미세한 존재, 중생이 지은 업에 따라 나고 죽는 것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지녔다고 한다.
아마도 일반 대중 입장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면 신기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능력을 '신통력'이라고 불렀겠지. 하지만 그 역시 부처님의 제자이고, 그가 깨달은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하나일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나율 존자가 천안통을 가졌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인과율을 완연히 깨달아 지금 상황을 명확히 꿰뚫어보고, 그로 인해 그 이전의 원인과 그 이후의 결과를 알아채는 지혜를 가졌다'라고 말해도 될 듯 싶다. (아무렴, 이정도는 되어야 10대 제자가 되는 거지!)
나는 이러한 아나율의 모습에서 다시 원형의 심상을 느낀다. 인과관계의 수레바퀴, 법륜의 수레바퀴, 돌고돌고도는 우리의 인생, 윤회(輪廻, Samsara).
동그라미를 떠올리니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가 떠오른다. 별안간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 헵타포드와 조우한 언어학자 루이즈. 미지의 존재로서 서로가 소통을 위해 노력하다 그녀는 마침내 헵타포드의 세계관이 인간의 그것과 달리 현재 과거 미래가 통합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한 그녀 역시 현재 과거 미래가 혼합된다. 하여 언젠가는 닥치게 될 인류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그녀 인생에 도래할 비극도 초연히 받아들이기도 한다. (명작이야.....)
이 그림은 에셔(Escher)라는 작가의 '그리는 손(Drawing Hands)'라는 작품이다. 나는 언젠가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오래토록 내 맘 속에 남아있다. 손이 손을 그리고 또한 손이 손을 그리면 이 작품의 시작은 어디일까. (다음 문장을 읽기 전에 5분 정도 나만의 답을 떠올려 보자) 그것은 바로 '내가 지정한 그 지점'이 시작인 것이다. 이 작품은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함께 말 해주고 있다.
돌고 도는 인생을 사는 우리가 윤회의 바퀴에 휩쓸려 가 버릴지, 그 바퀴의 시작점을 정하고 굴리기를 시작할 것인지는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이런 식으로 자유의지를 어필 해 본다. 누군가는 '생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자유의지를 발현하며 살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가는 길이 정해져있다'며 운명론에 무게를 싣을지도 모른다. 자세히 들여다 본 인생과 멀리서 조망한 인생이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그 둘은 분명히 병존하고 있다. 파동이면서 또한 입자이고 입자이면서 또한 파동인 빛같이.
그렇게 보니까 창세기 1장 3절의 말도 달리 느껴진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 종교는 가지고 있으시지는 않지만 윤회는 믿으신다는 이 순간 작가님을 위하여 남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