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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에세이] 아이의 죄책감

by 힙스터보살


내가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원죄설'이다. 어떻게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죄를 지으면서 태어난단 말인가. 어찌 보면 좀 잔인한 거 아닌가? 아직 아무 것도 할줄도 모르는 갓난아기가 이미 죄인이라니.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서 어쩌면 원죄설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4시간 애 옆에 붙어있으면서음 외에는 아무런 표현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상대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벅찬 일이었다. 유난히 개인주의가 발달한 유럽문명에서, 그 문화에서 커온 엄빠들이, 나의 영역을 이토록 침법하는 상황에 놓이다보니 원죄설을 생각 해낸 건 아닐까? 내가 신생아를 다루면서 오히려 나홀로 보내는 시간이 더할나위 없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된 걸로봐서, 나는 한국인 치고 꽤나 개인주의자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었지 싶다. (일전에 만났던 자폐아 특수교사인 동생은 오히려 신생아 때가 좋았다고. 초3이 된 딸래미 대하는 게 훨씬 어렵다고 하더라~)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울 아들래미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사랑의 크기 못지않게 힘들었다는 것 뿐. 그리고 새삼 우리 엄마를 바라보며, 그만큼 힘들어했을테고 또 그만큼 사랑 해 주셨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랑은 죄악을 감싼다. 때문에 사랑이 부재한 곳에 악이 깃든다고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나보다.


아이가 41개월이 되니까 소유욕이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전에는 자신의 것을 양보하는 것도 어린애 치고 굉장히 잘했고, 시간 약속을 정한 다음에 시간이 다되면 하던 것을 멈추는 것도 (물론 지금도 못하는 편이 결코 아닌데) 참 잘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것을 내어줘야 한다는 인식이 된다든가, 내가 즐기던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알아챈 순간 반응이 전보다 훨씬 격렬해졌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날 향해서 '아아아아악--!!!!'하고 소릴 치더라.


아빠는 엄마보다 TV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관대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에 울 아들램은 엄마는 5만큼 좋아하고 아빠는 100만큼 좋아한다고 하더라. (너 이자식....ㅋㅋㅋ) 그런 아빠라도 아이가 줄창 TV만 보고있으면 끄자고 하는 때가 있다. (아빠 덕분에) 푸지게 TV도 보았겠다 순순히 TV를 그만본 게 예전이라면, 요 며칠 전에는 TV를 끄자 하니 악다구니부터 쓰더라. 아이 스스로 격한 감정을 어찌할 수 없었는지 아빠를 때리려고까지 해서 바로 제제했다. 아이는 제제를 당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예전이라면 아빠를 향해 손찌검을 하는 아이를 향해 '△△이가 뭘 잘했다고 이러는 거야? 아빠를 왜 때려? △△이는 누군가가 때리면 좋아? 아빠도 맞는 거 싫어해!'하면서 아이를 혼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아이의 울음에는 '나만 옳아'라는 느낌과는 뭔가 결이 다른... 그 뭔가가 있었다. 그래서 바로 태도를 고쳐먹고 아이를 안아줬다. 아이는 갓난아이 시절마냥 내 품에 들어와 안기려 했다. 그레서야 서로 진정하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이 많이 속상했어? 아빠도 가 △△이가 지나치게 TV만 보는 게 걱정이 되어서 말씀하신 거야. △△이가 TV를 많이많이 보고싶어하는 건 엄마도 잘 알아." 이 말을 듣자마자 애가 또 운다. 아까보다 울음에 서러움이 많이 섞여있다. "에구에구 △△이 무엇이 그렇게 서러워. 괜찮아 괜찮아"하면서 아이의 등을 도닥인다. 그렇게 아이는 한참을 안겨있었고, 아빠가 방에서 나오자 달려가면서 더욱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아빠 미안해!!!!!"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냐고요? 아 물론이죠. 육아전문가가 아니라도 충분히 알 수 있어요.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내가 참 좋아하는 심리학자이다. 그녀가 TED에서 빵 떴던 스피치가 바로 이것이다. 한 번 봤던 유튜브 영상을 다시 찾아보는 일이 드문데, 나는 종종 이 영상을 다시 찾아본다. 그녀만의 재치가 좋기도 하거니와 내용은 더 좋다. 이 영상에서 그녀는 수치심(Shame)에 대해 말한다. 한국어로 번역된 내용이 이해가 쉽겠지만, 영어를 좀 하실 줄 안다면 원문으로 이해해도 정말 좋지 싶다.


When you ask people about belonging, they'll tell you their most excruciating experiences of being excluded. And when you ask people about connection, the stories they told me were about disconnection. So very quickly -- really about six weeks into this research -- I ran into this unnamed thing that absolutely unraveled connection in a way that I didn't understand or had never seen. And so I pulled back out of the research and thought, I need to figure out what this is. And it turned out to be shame. And shame is really easily understood as the fear of disconnection. (... 중략 ...)


The things I can tell you about it: It's universal; we all have it. The only people who don't experience shame have no capacity for human empathy or connection. No one wants to talk about it, and the less you talk about it, the more you have it. What underpinned this shame, this "I'm not good enough," -- which, we all know that feeling: "I'm not blank enough. I'm not thin enough, rich enough, beautiful enough, smart enough, promoted enough." The thing that underpinned this was excruciating vulnerability. This idea of, in order for connection to happen, we have to allow ourselves to be seen, really seen. (... 중략...)


아이가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 그 테두리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건, 다시 말해 그 구성원에서 배제되는 순간의 두려움도 크다는 걸 함께 의미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빠 싫어어아아악-!!!'하고 악다구니를 치던 그 순간, 부지불식간에 스스로 느꼈을 것이다, 이게 '안좋다'는 걸. 내가 엄마아빠와 함께 하기에는 너무 나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았기에 "아빠 미안해!!!!!"하며 울며 달려나갔던 게다. 그 불안과 수치심만큼 서러운 눈물이 나왔을테지. (하... 우리 아들램이 또 이만큼 컸네 ㅠㅠ) 그 마음의 고통을 짐작하니 아이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브레네 브라운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


There was only one variable that separated the people who have a strong sense of love and belonging and the people who really struggle for it. And that was, the people who have a strong sense of love and belonging believe they're worthy of love and belonging. That's it. They believe they're worthy. And to me, the hard part of the one thing that keeps us out of connection is our fear that we're not worthy of connection, was something that, personally and professionally, I felt like I needed to understand better. So what I did is I took all of the interviews where I saw worthiness, where I saw people living that way, and just looked at those.... (중략) ...


특히 난 이 부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The people who have a strong sense of love and belonging believe they're worthy of love and belonging. That's it. (사랑과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들이 그럴만한다고 믿을 뿐입니다.)" 내가 한창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시절에 보석과 같이 내 마음에 박힌 문장이 바로 저거였다. 저 말 덕분에 내가 나를 껴안아줄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지금에 와서는 내가 내 아이를 껴안아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렇게 내가, 브레네 브라운이 말하는 Whole-hearted people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게 어쩌면 보살의 자비심의 또다른 표현이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무릇 수행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같다. 네가 있음으로 하여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 기쁘다. 이 즐거움을 힘겨운 육아를 수행중이신 여러 엄빠들이 느껴보셨으면 한다. 그렇게 성불하시면 내게는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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