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몇 달 전 아이들과 서점에 갔다가 책을 한 권 샀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 끌려서 책을 집었고
'오직 이성과 논리로 풀어낸 죽음과 삶의 의미'라는 표지 문구에 사로 잡혀서 책을 구매하였다.
'죽음'이라는 인류 최대의 미스터리를 과학적 방법이 아닌,
오직 머릿속에서 이성과 철학만으로 탐구한다는 발상 자체가 흥미로워 구입하였지만
늘 그렇듯이 바쁜 일상에 묻혀서 이 책은 그대로 책장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 책을 다시 꺼낸 건 얼마 전의 일이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샤워를 하다가 나는 문득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종교는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자는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경이로운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탐구하다 보면 슬그머니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이미지는 없지만
막연히 '영혼'과 '사후세계'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육체의 굴레를 벗어나면 그 모든 미스터리가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죽음'과 꽤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예전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 나에게 '환자의 죽음'은 언제나 큰 사건이었다.
(물론 내가 가족들의 큰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최선의 노력으로도 생명을 구하지 못한 환자는 늘 있기 마련이었고
그럴 때마다 가족들의 원망과 슬픔을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늘 겪는 일이지만 늘 힘든 일이었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상대적으로 고령의 치매 환자분들이 많은 곳이다.
분명 예전보다 환자의 죽음을 겪는 일도 더 많지만 이상하게도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된 환자와
중증의 치매로 아무런 사회적 기능 없이 와상상태로 콧줄로 영양을 공급받다가 합병증으로 사망한 고령의 환자.
생명에 경중이 없기에 두 죽음에도 분명 경중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령의 치매환자가 사망하는 경우 가족들에게 원망보다는 고마움의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 돌이킬 수 없는 위독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려내라고 울부짖는 가족은 한 사람도 없다.
다만 편안히, 아프지 않게 보내달라는 가족이 대부분이다.
누군가는 이런 가족들의 언행이 매정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직접 수발을 들던 가족의 입장은 당사자가 아닌 어느 누구도 뭐라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나도 환자의 죽음에 많이도 무뎌지게 되었다.
그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샤워를 하다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증의 치매 환자분들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걸까?'
죽음을 항상 나의 입장에서만 생각했기에 당연히 '사후세계' 또한 나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이미지는 없지만 막연하게 지금의 나의 인지와 기억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로 '나'로써 존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인지기능을 상실한 치매환자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혼의 상태에서도 똑같이 인지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인지는 육체의 문제이므로 영혼은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치매환자들도 영혼의 차원에서는 정상적인 인지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 영혼은 어떠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걸까.
혹시 육체의 굴레를 벗어나는 순간 예전 건강하던 상태의 인지능력을 가진 영혼으로 회귀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몇 살 때의 인지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그런 형편 좋은 일이 과연 존재할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손가락 끝이 퉁퉁 불어서야 나는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몸에 물기를 닦고 머리를 말리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영혼과 사후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그리고 옷을 입고 출근하려던 찰나, 책장에 꽂힌 책이 눈에 들어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서론이 길었지만,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이다.
현재 진행형으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그리고 이 생각할 거리들을 '생각하는 아이'라는 이름의 강의 프로젝트로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에게는 다소 무겁고 두려운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게 아니고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