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해야 할까? 직업의 귀천(貴賤)
강아지 돌보는 알바
인도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면 짜이를 마시러 나가고, 날 위해서도 짜이 한 잔을 가져다주곤 했다.
인도에서의 짜이 타임은 거의 생사의 사활이 걸린,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아주 중요한 인도 사람들의 삶의 일부이다.
한 번은 수업을 할 때 한 학생이 실수로 짜이를 쏟았다. 문제는 아무도 치우지 않고 청소하는 사람이 와서 치우길 기다리며, 쏟아진 짜이를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아닌가?
내가 얼른 화장실에 가서 휴지를 가져와 닦았더니 그제야 한 학생이 함께 쏟아진 짜이를 닦았다.
인도에서는 보통 그렇다. 휴지를 줍는 사람, 청소를 하는 사람, 바닥을 닦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어서 그러한 일들을 선뜻하려고 들지 않는다. 특히 물걸레 질이나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 바닥을 닦는 일은 가장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나도 모르게 내가 바닥을 닦거나 청소를 할 때는 내게 달려와하지 말라고 나를 말렸다.
두 가지의 이유에서다.
하나는 나는 그런 일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며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그러한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지위가 낮은 사람(한국에서 온 불가촉천민?)이라고 생각해서 함부로 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을 해서는 안된다고 만류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도에서는 몸이 좀 더 편할 수 있다. 환경이나 기후의 여러 열악한 상황을 눈 감아 준다면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 고된 노동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실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인도 여성들은 참 편하다. 심지어 아이들을 돌봐주는 유모(나니)가 있어서 한국 엄마들에 비하면 육아의 고충이 훨씬 덜하다.
대한민국 엄마들만큼 살림하랴 육아에 아이들 양육까지 도맡아 하는 슈퍼 엄마들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솔선수범하는 게 몸에 밴 한국 사람들은 이것저것 손수 잘하기 때문에 문화 차이를 극복하며 적응하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아무튼 그래서일까? 인도의 길거리는 너무 더럽고 냄새가 많이 난다. 쓰레기가 너무 많은데 청소하는 인력은 부족하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솔선수범하지 않고, 쓰레기를 치우거나 정리해야겠다는 의지가 없으며, 전체적인 시스템에도 허점들이 있어 길거리는 깨끗해지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대형 쇼핑몰이나 관리가 잘 되는 곳은 예외이다.
얼마 전 내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혹시 강아지 세 마리한테 밥 주고 똥 치워주는 아르바이트 하실래요?"
이장님께서 내게 물어오셨다. 순간 나는 당황해서 살짝 얼음이 되었다. 속으로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아니, 어떻게 나한테 그런 일을 하라고 물어보시지?'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태연한 척하면서 대답을 했다.
"아, 글쎄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동네에 한 분이 6월에 한 달 동안 어딜 가야 해서 강아지들 돌볼 사람이 필요하대요."
"네.... 생각해볼게요."
일단 대답을 미루고 전화를 끊었다.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그렇게 쉽게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 우리가 시골에 와서 산다고 무시하는 건 아닌지... 갑자기 부정적인 생각이 엄습하며 기분이 상했다. 마치 내가 아직 인도에 있는 것처럼 인도 사람들의 세계관에 묻혀 나를 가두고 있었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리 기분 나쁠 일이 아닌 거 같았다.
생각을 바꾸니 달라 보였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그래도 내가 이 곳에 와서 신임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끼는 강아지 세 마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된 거 같아 오히려 감사하기도 했다. 아마도 우리가 장군이와 꽃순이를 사랑으로 기르는 모습을 동네 분들이 지켜보고 계셨던 게 분명했다.
얼마 후에 대답을 드렸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할 수 있어요. "
그렇게 6월이 되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셨지만 객지에서 교편생활을 하시다가 은퇴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시골생활을 하고 계신 동네 어르신의 강아지들이었다.
"은퇴하고 여유가 없어서 여행도 못 다녔어요. 이번에 큰맘 먹고 남쪽으로 여행을 다녀보려고 해요. 주중에는 여행하고 주말에 집에 왔다 가려고 하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
그렇게 나는 퍼지와 조이, 또또를 만났다.
그리고 주중에 매일 들러서 강아지들에게 물도 주고, 밥도 챙겨주고, 배설물도 치워주며 물로 살짝 청소도 해준다.
오늘은 불현듯 성경에 나오는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일하며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 집을 생각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내 모습과 순간 오버랩되며,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기분이 꽤 괜찮았다.
이제 세 마리 댕댕이 퍼지와 조이, 또또와 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만 두고 집으로 올 때는 마치 내게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직업의 귀천이 있을까?
고위급이 아니면 어떠한가?
높고 낮음을 내가 설정하지 않으면 되는 것을, 나 스스로 옭아매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살리고 돕는 자리에서 행하는 모든 직업은 다 귀하다. 높은 지위에 있다 해도 누군가를 죽이고 할퀴며 상처를 내는 직업이라면 어찌 귀하다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쩌면 나는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려 애쓰는지 모르겠다.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싶은 욕구가 내 속에도 꿈틀거리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