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벨 Oct 11. 2021

어서 와, 사춘기

너는 네 삶의 주인


식사 후 3분 안에 칫솔질하기

밤 10시 전에 잠들기

매일 한 시간씩 독서하기

물건 제자리에 정리하기

하루 두 잔 우유 마시기

어른이 드신 후에 숟가락 뜨기

음식은 식탁에서만 먹기



모두 내가 만들어준 아이의 생활 습관이다.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시기에 좋은 것들만 주고 싶어 정해 놓은 규칙들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는 모르겠지만, 세 살 버릇 열둘까지는 실천했다. 그리곤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금니가 나오기 전까지 부모님께서 양치를 해주시는 게 좋아요’ 치과 선생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문가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서 아직 어금니가 나오지 않은 아이의 이를 닦아 주었다. 문제는 아이의 사춘기였다. 낮시간에는 스스로 이를 닦고 저녁에만 아이의 이를 체크한다는 생각으로 내가 미처 해주지 못한 낮동안의 몫까지 저녁식사 후에 박박 닦아주었다. 아이의 얼굴에선 심술이 잔뜩 났다. 어제도 닦고 그제도 닦고 매일같이 닦아 주었는데 오늘은 유독 심술이 났다. 그리곤 자연스레 찾아온 아이의 사춘기를 발견했다.


아이의 어금니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지만 우리는 치아관리를 아이에게 맡겼다. 아이가 원해서였다.  부모가 닦아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우리가 해주는 관리의 필요성이 사라져 버린듯 했다. 칫솔 질를 시작으로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 놓았던 생활 습관까지 모든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잠들기 전 양치하기

밤 11시 잠들기

원할 때 독서하기

물건 쌓아두기

우유 또는 탄산도 마시기

혼자서 밥 먹기

흘리지 않으면 어디서나 먹기



나무랄 것이 없다고 여기던 좋은 습관들은 어느덧 아이 삶의 방해 요소가 되었다. 10시에 잠이 들기엔 하루가 짧았고, 정해진 독서시간에는 독서를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다. 더구나 식탁에서만 음식을 먹기엔 재미가 없었다. 음식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열둘까지 해왔던 좋은 습관은 어쩌면 부모의 것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 부모의 생각이 반영된 부모가 원하는 습관. 이미 많은 날을 해왔기에 몸에 착 달라붙은 습관인 줄 알았다. 그런 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다른 방법을 몰랐기에 그냥 따랐을 뿐이다. 원하지 않는 생각을 내보일 땐 부모의 잔소리가 길었고 그것을 막기엔 자신의 생각이 짧았기에 부모의 생각대로 살아준 것이다. 딱 열두 해까지만.


열세 살이 되던 해, 아이는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그리곤 자신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주장을 펼쳤다. 때론 반항적이고 억지도 잔뜩 들어있었다. 아이의 말이 모두 다 합리적인 것은 아니었고 합리적일 수도 없었지만 그냥 아이를 믿어주기로 했다.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도 했다.


정해진 시간보다 한두 시간 더 늦게 자더라도 그 시간 안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는 것이 아이의 마음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곤 자신의 것을 인정해주고 들어주는 부모에게 더 많은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오늘의 11시가 내년에 12시가 되고 새벽 1시가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은 저만치 밀어 두고 이제 막 자신의 틀을 만들고 생각을 펼쳐야 할 때 많은 응원과 지지가 아이를 자라게 한다는 것을 부모가 된 나는 오늘도 배운다. 그럭저럭 별 탈 없는 오늘 또한 한 뼘 더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전 01화 우리 모두의 사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