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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Oct 11. 2021

열세 살, 오늘의 너

당연하지, 사춘기 인걸


아이의 몸이 십 킬로그램이나 증가했다.


마른 체형에 평균 키를 미치지 못했기에 ‘잘 먹어야 큰다’는 소릴 입에 달고 살았었다. 살이 좀 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번 해와서 그런지 갑자기 찐 살은 그동안의 소원을 이룬 듯했다. 성장기에 찐 살은 키로 간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철썩 같이 믿었지만, 아이의 몸은 더 많이 거대해 질뿐 키를 크게 하는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바지, 티셔츠는 물론이고 속옷과 양말까지 작아져 버렸다. 조금씩 커졌다면, 좀 불편하지만 당장은 입을 수 있는 옷이 되었을 텐데 입을 수 있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아침에 아이는 거대한 어린이가 된 듯했다.


갓난아이를 안을 때 ‘무겁다’라는 말이 금기어였다면, 갑자기 몸이 커져버린 아이에게도 ‘무겁다’는 말이 금기어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예전과 같이 나에게 몸을 살짝 기대거나 안겼을 때 훅 들어오는 무거움에 전과 같은 마음을 간직하긴 어려웠다. 말로는 할 수 없는 찌푸려지는 미간으로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자신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생각까지 비추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부모와의 거리가 생겨 버렸다.


아이와의 거리감이 반항심까지 불러들였다. 몸의 성장이 생각의 성장을 불러왔을 거라는 착각에 아이를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으로 대하였기 때문이었다.


“다 컸으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야지”

“다 큰 네가 먼저 양보를 해야지”

“아직도 이런 것도 모르면 어떡해”


별다른 대꾸도 없이, 알겠다는 말로 입을 꾹 닫아버렸다. 억울 거나 답답한 마음을 가득 품은 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방에서 마음을 어루만졌다. 아이의 뚜렷한 잘못이 아닌 것들로 아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아프게 하고 닫아버리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 더 이상 자신을 상처 줄 수 없게끔 꽁꽁 숨기면서 말이다.


며칠 전과는 다른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 내가 답답했다. 안쓰러운 아이의 모습이 아른거려 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갓 태어났을 때 길다고 좋아했던 속눈썹이 그대로였고, 다섯 살 때 미끄럼틀을 타다 넘어져서 이마를 꿰맨 자국까지 고스란히 아이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 뽀얀 얼굴빛에 영락없이 어릴 적 귀엽고 순수했던 아기의 모습 그대로 말이다. 조금 커졌다는 이유에서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었던 얼마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아이의 외적 변화로 다르게 대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아이를 내 안에서 꺼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었다. 잘못된 행동을 찾으려고 했던 시선에서,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을 찾으려는 시선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포동한 볼살이 보였다. 오물오물 밥을 먹는 입술이 포동한 볼살에 파묻혀 작아 보였다. 바삐 움직이는 작은 입술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사랑스럽다’ ‘귀엽다’ ‘복스럽다’라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어제와 다르게 아이는 엄마를 향해 웃어 주었다. 엄마에게 볼을 비비거나 안아주기까지 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인지 설거지를 대신해주거나, 커피를 타 주거나, 엄마가 힘들어 보이는 일에 알아서 척척 해주는 일들도 늘어났다. ‘사랑한다’는 말도 엄마에게 더 많이 표현했다. 며칠의 사건이 사랑이 고팠던 아이로 만들었던 것 같다.


자연스레 반항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춘기의 아이에겐 놀라운 변화였다.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찾는 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을 표현한 엄마의 태도로 인해, 말도 섞을 수 없던 사춘기의 아이가 이렇게 사랑스러워질 줄은 몰랐다.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를 봐주려 노력했다. 내가 사랑했던 꼬꼬마 아기가 보이고, 그동안 함께 했던 추억들이 얼굴에 잔뜩 들어있었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니 반항적인 태도의 아이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무엇이 밝고 예뻤던 고민 없던 아이를 불편하게 했을까 걱정이 되고 아이의 마음을 토닥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사랑스러운 마음을 되찾으니 가능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선 남자 주인공이 자고 일어나면 매일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한 사람이지만 매일 다른 얼굴을 하며 살아간다. 성별과 인종을 넘나드는 변화지만, 외모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듯했다. 영화처럼 외모가 아닌 내면의 사랑스러움을 찾아야 변화하는 아이의 모습도 사랑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아이는 내일의 아이와 다르다. 내년의 아이와는 또 다를 것이다. 오늘의 아이는 오늘 사랑해주어야 한다. 동그란 안경이 볼살 위에 앉을 때 보이는 보름달 같은 아이의 얼굴. 웃을 때 입가에 푹 파여 있는 보조개. 오늘이 아니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오늘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야 한다. 긴 세월에 잠깐 스쳐가는 열세 살의 삶을 함께 한다는 것은, 아이와 늘 함께 할 수 있는 부모만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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