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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벨 Oct 11. 2021

올해의 우선순위

너는 네 삶의 주인

우리는 자주 이사를 다녔으므로 2년 이상 같은 구조의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2년마다 가구의 위치가 매번 바뀌었고, 집의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가구였기에 자려고 누워 방안을 찬찬히 둘러볼 때 가구의 위치를 바꾸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꼈다. 그러니 2년 동안에 같은 방에서 자주 다른 구조로 살아온 셈이었다. 2년 이상의 집에서 머물었을 때도 그때의 버릇처럼 몇 달에 한 번씩 자리배치를 다시 하였다. 매번 같은 가구를 요리조리 위치만 바꾸었기에 가구 바닥에 먼지가 앉을 새가 없을 정도였다.


매번 달라진 집을 재미있고 신기하게 생각한 아이는 자신의  방 구조 또한 자주 바꾸었는데, 옷장에 비밀 공간을 만든다며 옷장의 옷을 모조리 꺼내놓고 아이가 사라 진적도 있었다. 물론 아이는 옷장의 비밀공간에서 쉬고 있었고 바닥에 널브러진 옷은 나중이 돼서야 고민하는 대책 없는 정리도 하였기에 아이가 방구조를 바꿀 땐 모른 척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은 미리 계획해둔 구조를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곤 아이의 계획과 엄마의 생각이 더해져 방 구조를 바꾸었다. 옮기면서 다시 정리해야 할 물건들은 수두룩했고 그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은 것을 분류했다. 그중에 돌 기념으로 찍은 널찍하고 깜찍한 사진이 좋아하지 않는 물건으로 분류가 된 듯 방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릴 적 사진 한 장이 큰 액자에 담겨 ‘이 아이는 어릴 적에 이렇게 깜찍했구나’를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이었는데 이것조차 자신의 방에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고 했다.


아이방에 어릴 적 사진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은 나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내 방에 결혼사진 조차 달지 않았다. 그건 십여 년 전 내 모습이 빛바랜 모습 같고 조금은 촌스러웠기에 달지 않았지만 아이의 사진은 그것과는 달랐다. 이건 정말 누가 보아도 깜찍한 사진인데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아이도 아니면서 방구석조차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아이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 사진은 고스란히 안방으로 왔다. 깜찍하게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을 볼 수 없으므로. 쓰레기장에서 깜찍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버릴 수 없으므로.


다시 사진을 바꿀 수도 없게끔 액자형태가 아닌 나무판에 프린트된 변형할 수 없는 사진을 보면서 깜찍했던 아이의 그 시절은 아이의 추억이 아닌 나의 추억이 된듯했다.


그리곤 아이에게 때때로 의미를 담아 선물로 주었던 인형들까지 아이 방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쓰레기통으로 가야 하는 처지에 휘말리고 말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껌종이 하나에 의미를 잔뜩 부여해 방안을 가득 채웠기에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낯섦이 가득했다. 가구의 위치를 다시 한번 바꾸게 된다면 지금의 중요했던 우선순위가 또다시 달라질 거란 생각이 들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흔들림 없이 구분 지어버리는 모습에 꽤나 멋지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적 사진과 애착 인형까지 밀어낸 아이의 우선순위는 무엇이 된 걸까. 버리고 다시 채우면서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들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열세 살 가을의 우선순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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