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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Jan 15. 2023

U. 그래서 넌 자존감이 어떻게 올랐니?

비법은 사랑이다.

자존감을 어떻게 올리는지에 대한 글을 쓰고, 그것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그녀가 물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네가 존재만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것은 사실이고 너무 중요한 말이 맞지만, 갑툭튀 너는 소중해라고 말하는 건 공감이 안됩니다.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너는 충분해'라고 하는 건 '어쩌라고'라는 느낌이니까요. 그래서 라포가 형성된 후에도 저 말이 마음에 와닿으려면 아주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글 속에서 "너는 충분히 소중해"라고 쓴 것은 진심이면서 그렇게 설득력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친구가 지적했고 저는 순간 답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냥  소중하고 충분하지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명확한 인생의 전환점에서 저를 성장하게 만든 사건들이 있었고, 그것이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나의 목표를 가지고 설령 이루지 못했어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했고, 남들보다 많은 책을 읽은 것에 대한 지적 자신감이 높았고, 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취향도 높았습니다. 대학 때부터는 줄곧 스스로 돈을 벌었고, 어렵다는 미국의 상담 박사과정도  번에 붙었고,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이제까지 모은 돈과 장학금으로 혼자 생활했습니다. 유학을 포기하고 삶의 방향을 돌렸을 때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저를 위한 선택을 했고 스스로 책임지고 또다시. 행복을 찾았습니다. 독립심과 자율성,  삶에 대한 애정은 저의 자랑이자 무기였던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라고  수는 없었습니다.


성취경험과 정신승리 이외의 무엇이 있었습니다.


내가 참 괜찮은 이 기분이 언제부터 어떻게 생긴 건지 순간 궁금해졌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진 채 지낸 지가 오래되다 보니, 그렇지 않았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더라고요. 그런데 분명히 자존감도 낮고 열등감은 높고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로 괴로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과거를 아름답게 까먹었는지 스스로가 놀라울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는지 그 징검다리들을 하나하나 떠올렸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는 환영받지 못한 존재, 울보, 못난이, 사회 부적응자 등으로 불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나를 바라봤던 순간들이 길었더라고요.  


남아선호 사상이 여전히 심하던 시절 저희 엄마는 내리 딸 둘을 낳으시고 셋째는 아들이라는 점쟁이의 말에 출산을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때는 여자아이라면 낙태를 하는 경우가 많아 법적으로 태아의 성별을 미리 얘기해주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점쟁이의 말이 엄마에게는 희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또 딸이었고, 아빠는 병원에 오다가 저를 보지도 않고 다시 술을 마시러 가시고 저의 친할머니는 오지도 않으셨다고 합니다. 몸이 아파 오래 입원을 해 있던 엄마는 일주일 동안 우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를 원치 않으셨던 것이 미안해 집으로 돌아오는 때부터는 더 많이 사랑해 주셨다고요. (TMI 지만 병원에서 발길을 돌린 아빠도 점집에 가셨고, 아들보다 훨씬 나을 테니 잘 기르라는 점쟁이 말에 웃으며 집으로 오셨다고 하는 뒷얘기도 있고요.)  


그렇게 태어난 셋째 딸은 뭔가 애매했습니다. 첫째 언니는 영재였고 둘째 언니는 예쁜데, 저는 똑똑하지도 예쁘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순하지도 않았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볼 때 보이는 그 난감한 표정과 어쩔 수 없이 했던 말이 오랜만에 떠올랐습니다.


"얘는 개성이 있네."


.

저는 그게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뭐라도 칭찬은 해줘야겠는데 마땅히  말이 없을  하는 얘기니까요.   때문인지 원래 그랬는지 분명 개성 있는 아이로 자랐는데, 일종의 모난 돌이었습니다. 식당 한편에 놓여있는 못난이 인형처럼 사람들이 보면 불만에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잔뜩 방어하고 있는 어린애였던  같아요. 못난이라는 말을 줄여서 어릴  별명은 '모노'였습니다.  엄마 말에 따르면 누군가  별명으로 저를 부르면  사람이 저희 집을 나갈 때까지,  눈앞에서  보일 때까지 울었다고 합니다. '눈물도  나는  소리만 빽빽 질렀다'라는 역시 모친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환영받지 못한 아이' 자라면서 '못난이'  거죠.  


예쁘지도 않고,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못하고, 잔머리가 부스스한 삐쩍 마르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입이 큰 여자애가 학교에서 인기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저는 늑대소년처럼 누가 나를 공격하면 같이 받아버리고 물어뜯어 버릴 것 같은 야생의 느낌이었고,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고, 기본 이상으로 화가 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의 욕망과 달리 인기 없고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어서 실제는 별로 저를 건드리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 학년에 한 번 정도 있었는데 누군가 저를 이유 없이 욕하거나 때리면 반드시 복수는 하고야 마는 아이였습니다.  딱 한번 초등학교 때 엄마가 저의 생일파티를 준비해 주셨는데, 왕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 어떻게 저는 이 기억을 수십 년 동안 까먹고 지낼 수 있었을까요!) 다음날 아이들이 제가 아닌 저와 같은 날 생일인 다른 친구의 집에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엄마가 잔뜩 차려놓은 음식 앞에서 친구들이 왜 안 오나 하고 있던, 생일이라고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기다리던 어린 제가 지금 생각하면 참 안쓰럽네요.


어릴 때부터 제가 예쁘다거나 어떻게 해도 앞으로 예뻐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언니같이 예쁜 얼굴은 타고나는 건데, 큰 언니처럼 공부를 잘하는 건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참 큰 착각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착각은 아니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그것이 저의 패배의식과 열등감의 기저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만, 도통 성적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거든요. 학교에서 흔히 공부는 많이 하는데 성적은 그만큼 높지 않은 그런 아이였으니까요. 버스에서도 쉬는 시간에도 짬나는 순간순간 영어 단어를 외우고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수능 실전 모의고사를 풀고 아침 자율학습에 야자가 끝나면 학원 가고 독서실로 바로 가서 새벽 1~2시까지 공부하다 집에 갔습니다. 잠도 4~6시간만 자고 하루에 14~16시간씩 공부만 했던 것 같네요. 하지만 결국 SKY는 못 갔고, 저의 열등감은 깊어졌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불편하고 뭔가 어색하고 지금의 내 위치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사람들과 마주치거나 밥을 함께 먹는 게 싫어서 학교 건물 옥상이나 빈 강의실에 혼자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기들은 제가 자퇴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저는 '사회 부적응자'로 자기 세계 속에 빠져서 지냈습니다.


그럼 무엇이 저의 자존감을 올렸을까요? 무엇이 나는 지금 이대로 충분해라는 믿음을 가지게 했을까요?


성취경험

정신승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랑'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찬송가 가사가 있죠. 기독교가 아니라도 그 가사를 그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거예요. 그런데 사랑받는 것도 쉽지 않고 사랑하는 일도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인간들에게 어려우니 주님이 '그 사랑' 주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만큼 사람의 비어있는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은 없습니다. 옛날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를 짝사랑하는 르네 즐 위거가 그에게 고백하며 말합니다.


"You complete me."


브리짓 존스 다이어리 때 보다 훨씬 앳된 르네 즐 위거가 하트 뿅뿅한 눈으로 "너는 나를 가득 채워(완성시킨다고도 번역하는데 저는 가득 채워준다는 말이 좋습니다.)"라고 말하거든요. 사랑하는 것 만으로 나를 가득 채우는 사람이라는 고백은 로맨틱하고 진심이라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동경의 눈으로 바라봤지만, 지금 생각하면 사랑이란 것 자체가 사람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더라고요. 그리고 한 번 가득 찼던 마음은 다시 비어버리지 않아요. 리필하지 않아도 가득 차는 화수분 같은 마음이 됩니다. 그게 진정한 자존감의 마지막 비법이었습니다.   


저는 사랑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태어날 때는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지만, 그것이 미안했던 엄마는 평생을 넘치게 사랑해 주셨고 저를 외면했던 아빠도 아들 부럽지 않게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저를 강하게 하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을 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랑을 주신 것에 매우 감사하고 그것이 저에게 축복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가족에게 사랑받은 아이만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모님께 사랑받은 아이가 자존감이 높아질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부모님의 사랑만으로 다 채워지지는 않으니까요. 저는 부모님에게 충분히 사랑받았지만, 자존감은 낮았거든요.   


한 인간의 자아는 가족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사회에서 형성되고 어느 시점부터는 부모나 가족이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오롯이 나의 몫입니다.     


그 변화의 시작이 연애였습니다.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 그것은 제 비어있는 마음을 한 칸 한 칸 채워줬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공부만 했던 저는 대학에 가고 외국에 나가고 일을 하고 또 공부를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모나고 거친 돌은 깎이고 더 패이기도 했지만 그 사이 아주 조금은 둥글어지고 어떤 면은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세 번씩 고백해도 거듭 차이기도 했고, 한눈에 반해 불같이 사랑하기도 했고, 퇴근길 가로등 밑에서 나를 기다리던 짝사랑 남자도 있었습니다. 사귀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아닌 척 화를 내다 혼자 돌아가는 버스에서 찔끔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비 오는 날 장미꽃 세 송이를 양복 안에 품고 와 활짝 웃으며 전해주는 화사한  사람도 있었고, 외국의 낯선 공항에서 김치볶음밥을 싸와서 기다려 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분명히 볼 거라 믿는 남편의 얘기도 빼놓을 수가 없겠네요.


남편은 소년처럼 맑고 밝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못생겼는데 귀여워서 저에게 만은 멋진 사람인데요. 결혼하고 3~4 년 정도가 되었을 때, 남편의 심장이 다른 사람과는 달리 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병원에서 지역의 대학병원으로, 결국은 서울의 큰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우리 둘의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앵두 같은 입으로 몇 가지 말을 비눗방울처럼 터트릴 때였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시부모님에게 맡기고 저와 남편은 짐을 싸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입원을 하고 다음날 저는 남편이 죽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내용의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무서웠는데 두렵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저와 우리 아이를 떠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설령 그렇다 해도 그와 사랑하고 함께 하기로 한 나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8시간이 넘는 수술이 끝나고 3시간이 넘는 회복시간을 거쳐 남편은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남편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이 그날이었는지 다음 날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감염을 막기 위해 비닐로 된 위생모와 위생복을 입고, 중환자실로 들어갔을 때 내가 사랑하던 그 사람이 그 같지 않은 모습으로 수도 없이 많은 줄들을 온몸에 여기저기 달고 있었습니다. 마르고 작은 얼굴과 목이 얼마나 퉁퉁 부었는지 마치 통나무 하나가 뭉텅 올려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가가자 남편은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윙크를 했습니다.   


죽다 살아나서 끔찍한 통증에 마약성 진통제를 끊임없이 맞고 있던 남편이 걱정하는 제가 걱정되어 그 작은 눈으로 윙크를 했다는 걸 저는 바로 알았습니다.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을 못 했지만 '걱정하지 마 나 괜찮아.'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너 눈 조금만 더 작았으면 도저히 윙크라고 봐주지 못했을 거야'라고 놀렸지만 그날 그의 '윙크'를 그 '사랑'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사랑받는 모든 순간순간은 저에게 "너는 정말 소중해."라고 말을 겁니다. 그 순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적금처럼 저의 20% 부족한 자존감을 꽉 채워줍니다.

    



사랑은.....

천 가지의 다른 표현으로

"너는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라고 속삭이며

당신을 꼭 안아줄 거예요.


성취경험. 정신승리. 그리고 마지막, 사랑.

아마 각자의 삶 속에 그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존감을 높이는, 행복을 더하는

마지막 조각들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조각조각을 찾는 것은 나만의 싸움이며 오롯이 나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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