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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May 16. 2024

사랑은 무죄.

사랑은 도대체 뭘까요? 


로맨틱한 감정으로서의 사랑만이 아닌 넓은 의미의 사랑은 인간관계에서 상대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느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대는 다른 인간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또 자기 자신일 수도 있겠지요.


캘리 맥고니걸 박사가 TED에서 스트레스와 인간관계 대한 강의를 한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가 스트레스에 대한 인간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실제 심장을 튼튼하게 해 주며 질병으로부터도 더 보호해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살펴 주고 또 보살핌 받는 것,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두텁게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실제 인간의 건강에 좋다는 것이죠. 저는 그것이 폭넓게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랑해서 신난다는 추천보다 사랑해서 힘들다는 고민이 더 많은 것을 보면, 사랑은 참 오묘합니다. 이 좋은 것이 왜 우리를 이다지도 괴롭게 할까요?


많은 이슈 중에 하나는 내가 사랑 한 만큼 상대에게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괴로움을 느낍니다.

나는 100까지 사랑을 하는데 상대는 70까지 밖에 사랑해주지 않아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100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상대에 비해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기대하는 마음도 없을 텐데, 사랑하기 때문에 실망하고 상처받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랑이 힘든 것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렇게 결국 상대가 나를 덜 사랑해서 떠나든, 내가 지쳐서 헤어지든 이별을 하게 되면 사랑은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사랑을 기다리기보다 두려움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이 잘못일까요?

사랑은 힘든 것이니 두려워하는 마음은 합당할까요?


저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공부는 조금만 하고 모든 순간 사랑하고 싶습니다.

전반적인 인간관계에서의 사랑도 좋지만, 특별한 관계에서 나누는 소중한 마음인 로맨틱한 사랑을 특히나 좋아합니다.

사랑을 하면 조금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덜 자도 안 피곤하고, 힘든 일도 즐겁습니다.

매일매일 보고 싶고, 작은 일도 궁금하고, 스스로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듭니다.

저라고 사랑하다 헤어지고 고백했다 차이고 더 좋아해서 실망했던 경험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이별의 순간에 든 번뜩이는 기쁨은

"아! 나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겠구나! 다시 사랑할 수 있겠구나!"

였습니다.


내가 좋다고 고백해도 상대가 나와 맞지 않고, 인연이 닿지 않고,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면 거절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잠시 슬프지만 불행한 일은 아닙니다.


사랑하고 이별을 하면 시간의 사래질 속에 껍데기와 모래는 털려 나가고 사랑했던 순간의 좋았던 기억들만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입니다. 사랑은 변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했던 찰나의 진심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내가 더 사랑받지 못하는 순간에 대한 상실감은 어떨까요?

이 부분은 앞선 경우보다는 좀 더 복잡합니다.  


우선은 상대가 정말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나를 덜 사랑했는가에 대한 전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교의 전제는 '비교의 대상들은 정확히 측정할수 있다' 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몸무게도 키도 돈도 아닙니다. 내가 받은 것과 내가 준 것의 양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그릇이 다르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랑하고 사랑받았다고 생각하는 빈도와 강도 역시 다를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100%를 다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40% 만 받았다고 슬퍼할 수도 있고, 나는 30% 를 주었지만 상대는 80%를 받았다고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또 나는 사랑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무시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나는 어제 더 사랑받았다고 생각했으나, 상대는 작년에 사랑을 더 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나의 마음과 마음의 표현의 방식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계속 변화합니다. 어제는 그랬지만 오늘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주관적 기준으로 상대의 사랑이 나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 사실일 때입니다.


안타깝지만 사랑은 주는 대로 딱 받는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지 말지는 오롯이 나의 결정입니다. 내가 더 사랑해서 얻는 것이 많다면 유지할 것이고 아니라면 헤어져야겠지요. 나에게 더 득이 되는 선택을 스스로 하면 되기에, 상대가 내 기대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원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득과 실을 명확히 가늠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단기간에는 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득이 될 때가 있고, 득이라고 생각했지만 리스크 파악이 잘 안 되어 결국 실 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득실과 그로 인한 리스크를 잘 분석하여 앞으로의 행동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고 그 결정의 자율권과 책임도 나에게 있습니다.

또, 더 사랑한 쪽이 언제나 손해라고 단정해서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사랑받아서 얻는 기쁨도 값지고 행복하지만, 사랑해서 얻는 기쁨 역시 소중하고 나를 성장하게 합니다.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고 자존감도 높아집니다. 그럼에도 사랑의 저울이 기울어서 받게 되는 슬픔과 고통이 너무 크다면 난 더 이상 그 저울에 올라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어떤 사랑보다, 결국 나에 대한 사랑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러니 사랑은 죄가 없습니다.

사랑은 정말이지 "그저 좋은 마음"입니다.



위의 글은 "안녕 나의 선샤인" 14화 K. 사랑이 너무 힘들어요. (brunch.co.kr) 에 수록했던 글입니다. 처음 "사랑은 언제나 신나"의 연재를 시작했을 때 마지막에 이 글을 올리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간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신나게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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