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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Sep 24. 2024

12. 나도 네 새끼 죽든 말든 알 바 아냐

윤영은 혼자 울던 18살의 소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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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제 와서 네 아들이라고?

집으로 돌아온 윤영은 영철로부터 소장을 받는다! 윤영은 과거 영철이 임신한 자신을 버리고 떠나고 그의 엄마가 애를  지우기 위해 찾아왔던 기억을 떠올린다.


윤영이 말한 카페에 영철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멀리서도 그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15년이 지났지만, 과거의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문득 그의 얼굴이 은호랑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 윤영을 놀랍고 불쾌하게 했다. 테이블 위에 오늘 우체국에서 가져온 소장을 올려놓고 말없이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얼마 만이지. 잘 지냈어?

- 그런 얘기하려고 연락한 거 아니잖아.

- 그렇지.

- 왜 온 거야?

- 은호. 많이 컸더라.

- 딴소리하지 말고 말해.

- 내가 면목이 없다.

- 얘기하라고.


윤영은 꽥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목소리를 더 낮춰 얘기했다. 혹시라도 인제 와서 양육권을 빼앗아 가고 싶어 온 것이라면 상대에게 흠 잡힐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온 상태였다. 윤영은 카페로 들어오기 전부터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켜 놓고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뒤집어 올려놓았다.


- 나도 그때 갑자기 미국으로 가면서 좀 혼란스러웠어. 그래도 너한테 연락을 해야 했는데.

- 너희 엄마가 와서 은호를 낙태시키려고 날 병원으로 데려갔었어.

- 나는 몰랐어. 진짜야.

- 아니. 너는 모르고 싶었겠지. 엄마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았겠지. 그랬던 네가 왜 다시 우리를 찾아온 거지?

- 사실 내가 지금 좀 급해.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알아. 내가 죽일 놈인 거 알아. 근데, 정말 미안한데 근데 은호 도움이 필요해.

- 안 된다고 생각하면 하지 마.

- 윤영아.

- 그냥 우리를 내버려 둬.

- 윤영아. 크리스가 매우 아파. 은호 동생이야. 7살이고. 사진 좀 볼래?     


영철이 내미는 핸드폰을 윤영이 밀쳐버렸다. 그런 윤영의 손을 영철이 붙잡고 말했다.


- 크리스가 급성 백혈병이야. 지금 많이 안 좋아. 도무지 방법이 없어. 조혈모세포 이식받지 못하면 얼마 못 버틸 거야. 나도 애 엄마도 아무도 맞지 않아. 윤영아 너도 부모잖아. 제발 부탁할게.

- 뭐라고? 너도 부모잖아? 은호는 네 자식이 아니니?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도 없던 네가 네 새끼 때문에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서 아빠 행세를 하려는 거야? 나도 네 새끼 죽든 말든 알 바 아니야. 이 개새끼야. 소송을 하든 뭔 개지랄을 하든 맘대로 해봐. 하지만 은호 털끝 하나 손대지 마. 그럼 진짜 죽여 버릴 거니까. 쓰레기 같은 게!


윤영은 녹음하고 있다는 것도, 변호사의 조언도 모두 잊고 소리를 질렀다. 윤영이 영철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영철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윤영의 손아귀에 흔들렸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윤영도 모르지 않았다. 윤영은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 은호한테도 다 얘기했어?

- 다는 아니야. 동생이 있고 아프다고만 했어.      


윤영은 헛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나타난 아빠가 자신에게 동생이 있고 그 동생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은호가 얼마나 어이없고 혼란스러웠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모두 구겨져 버리는 것 같았다.


- 넌 그런 얘기는 보호자에게 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 나도 아빠야.

- 너 진짜 미쳤구나.

- 은호도 많이 컸잖아.

- 컸다고? 이제 15살이야. 중학생이라고. 은호가 상처받을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아? 넌 그때도 지금도 오로지 너밖에 없어. 나도 은호도 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

- 윤영아. 제발. 제발. 내 얘기 좀 들어봐.

- 아니. 이제 내가 이전의 김윤영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게. 나는 은호 엄마고 너는 지금 법적으로 은호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한 번만 더 은호 앞에 내 허락 없이 나타나서 미친 소리 지껄이면 납치, 협박으로 신고할 거야. 더 할 말 있으면 변호사 통해서 연락해. 너랑 말도 섞기 싫어.      


윤영은 영철을 뒤로하고 나왔다. 몸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빨리 영철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은호를 만나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나의 작은 아기가 혼자 힘들어하고 상처받아 울부짖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윤영은 핸드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껐다. 핸드폰의 밀린 메시지에 지수의 프로필이 여럿 떠있었다. 윤영은 지수의 메시지를 눌러보지도 않고 바로 은호에게 전화했다.      


'은호야. 미안해. 엄마가 다 잘못했어. 제발 전화받아!'       


하지만 은호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혹시라도 은호를 놓칠까 봐 카페를 나와 바로 은호의 학교로 갔다. 아직 하교 시간이 남아있었다. 윤영은 학교 앞에 차를 주차하고 기다렸다. 학교 앞은 자신 이외에도 꽤 많은 차들이 이미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자신은 한 번도 학교 앞에서 아들을 기다렸던 적이 없었다. 일해야 했고, 아닐 때는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피곤함에 절어 잠을 잤다. 나에게는 이유가 있었지만 매일 이런 풍경을 보았을 은호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윤영 자신도 그랬다. 엄마는 한 번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자신을 기다린 적이 없었다. 교문 밖으로 아이들이 하나둘 나왔다. 윤영이 차에서 나와 교문 앞으로 가서 은호를 찾았다. 안쪽에서 은호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 은호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은호가 흠칫 놀라는 것 같더니 무심한 듯 자신을 지나쳐 갔다.     


- 은호야. 타. 차 가져왔어.


윤영은 말없이 은호를 차에 태우고 자신이 고등학교 때 혼자 살던 반지하 월세방을 찾아갔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도 가파른 길에 움막 같은 집들이 여전히 따닥따닥 붙어있다. 입구마다 '가난'이라는 글자를 새겨놓은 듯 의심의 여지없이 허름하고 낡아 있었다. 재건축이라도 하려는 건지 비어 있는 집이 반 이상은 되어 보였다.  차도 들어가지 않는 좁은 길로 뚱해 있는 은호를 데리고 걸어갔다. 문을 열면 사람보다 바퀴벌레가 먼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던 윤영의 반지하 방은 더는 그곳에 없었다. 다시 뭔가를 세우려는 듯 잡초가 무성한 곳에 창고 같은 컨테이너 하나가 들어서 있었다.   

    

- 없어졌네. 한번 보여주고 싶었는데.

- 뭘?

- 너를 처음 가진 곳.

- 여기?     


은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 응. 여기 낡은 다가구 주택이 있었거든. 난 거기서 가장 후진데 살았어.

- 이런 데서 잘도 애를 낳았네.

- 그러게. 어떻게 하면 그랬을까. 너를 가지고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어.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고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매일매일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엄마 그때 겨우 17살이었잖아. 자랑은 아니지만. 그런데 뱃속에 아가가 내가 울고 있으면 똑똑하고 노크를 하는 거야. 배를 통통 차기도 하고 정말 손잡이 같은 게 불룩불룩 나오기도 하더라. 진짜 네가 있더라.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어. 힘이 불끈 났지. 너 낳고 1년은 미혼모의 집에 있었어. 그때가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때 같아. 얼마나 예쁜지. 울어도 예쁘고 웃으면 더 예쁘고 먹기만 해도 예쁘고 똥을 싸도 예쁘더라. 한 번도 값진 걸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너를 갖고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았어. 너는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고 그 후에도 나에게는 제일 빛나는 보석이었으니까. 다시 그때의 너를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고 귀여운 우리 아기.

- 버렸잖아. 내가 엄마랑 다시 같이 살면서도 또 버려질까 봐 얼마나 두려웠는지 알아.

- 알아. 나도 그랬으니까. 그때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 그래도 엄마가 정말 미안해 은호야. 하지만 너도 알잖아. 엄만  단 한 번도 널 버린 적 없어. 돈이 필요했어. 널 안전하게 기를 집도 필요했고. 널 안고 다시 여기로 오고 싶진 않았어. 미혼모의 집에서 나왔을 때 드디어 어른이 됐지만 거기서 배운 미용 일로 낮에 일해도 벌이가 얼마 안 됐어. 그래서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고 주말에도 닥치는 대로 일했어. 그렇게 일하면서 너를 돌볼 수가 없었어. 5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7년이나 걸렸어. 그땐 울지 않았어. 무섭지도 않았어. 네가 있으니까.

- 그냥 오지 말지 그랬어. 그럼 엄마도 편했을 텐데.

- 전 재산 두고 어디 가니. 네가 내 제일 큰 보석인데.

- 엄마.

- 응.

- 나 아빠 만났어.

- 응. 알아.

- 알아?

- 응. 엄마한테 연락 왔었어.     


은호가 당황한 얼굴로 윤영을 쳐다보더니 금세 시무룩해졌다.     


- 미안해 엄마.

- 네가 왜.

- 엄마 속이고 엄마 때린 거…….

- 엄마도 미안해. 엄마는 바보같이 아무것도 몰랐어. 엄마가 너무 미안해.       


윤영이 은호를 꼭 끌어안았다. 윤영보다 덩치가 큰 은호가 작은 아기처럼 은호의 품속에 안겨 울었다. 둘은 한참을 울고 다시 차에 탔다.      


윤영은 정확히 알아야 했다. 영철의 진짜 속셈이 뭔지, 은호는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지켜야 할지를 알고 철저히 대비해야 했다. 막막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가 윤영을 어디로 가야 할지 이끄는 것 같았다. 윤영도 한 번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생부라는 사람이 이제까지 모른척했던 아들의 골수를 빼가려는 목적으로 연락해 오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은호가 그 사실까지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은호와 얘기하면서 뱃속의 은호를 죽이려고 했던 영철의 엄마가 학교 앞까지 찾아갔었다는 것을 알고는 치가 떨렸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염치나 양심 따위는 없는 인간들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은호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윤영의 핸드폰이 연동되어 있는 자동차 화면에서 지수의 전화번호가 떴다. 윤영은 은호의 눈을 피해 전화를 끊고 재빨리 화면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음 이야기

13. 기다리는 연락은 오지 않고

자신의 침대에서 함께 새벽을 보낸 후 윤영에게는 연락이 없고, 지수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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