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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Sep 25. 2024

13. 기다리는 연락은 오지 않고

연락 없는 윤영을 기다리던 지수에게는 예상치 못한 문자가 온다.

지난 이야기

12. 나도 네 새끼 죽든 말든 알 바 아냐

은호의 생부인 영철을 만난 윤영은 더 모자의 삶에 들어오지 말기를 경고한다. 윤영은 은호가 이미 영철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은호에게 달려가 그간의 오해를 푼다.   


오랜만에 학교에 온 지수는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특성화고등학교여서 3학년은 거의 실습이었고 수시지원도 끝나서 학교 수업은 형식적이었다. 지수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버지 때문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만나고 잠시 혼란스러웠던 마음은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이미 잊혔다. 이전 같으면 아버지나 엄마로 인해 평안함이 흔들리면 다시 자리를 잡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과거의 분노가 밀려왔다. 사람들에게 날이 섰고, 밤에는 잠이 안 왔다. 집에 있으면 내내 그랬다. 아니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자신이 벌레같이 하찮다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화가 나고 억울했다. 그런 기분이 차곡차곡 쌓이면 우울하고 무기력해졌다. 그들의 집에 있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흔들림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호수에 던져진 돌이 아니라, 호수를 받치는 대지였다. 대지가 흔들리면 맞설 힘이 없었다. 그래서 나왔고, 살만하다고 느꼈다.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아주 쉽게 지수의 삶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흔들리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막상 마주하면 ‘창’하고 깨지는 자신이 한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지난 설이 그랬다.      


설날에 지수는 그래도 가족이라고 집에 갔었다.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방은 그나마 그대로 있어 컴퓨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밤늦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트렁크 끌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인 것 같았다.       


"뭐야. 저 방에 누가 불 켜놨어? 혹시 걔 온 거야? 당신이 가봐. 뭘 가져가려고 온 거야."      


법적인 엄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이 점점 가깝게 들렸다. 지수는 문을 등지고 누워 숨을 죽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존재를 확인하고도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진짜 아버지면서 한 번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그에게 더 화가 났다. 지수는 그들이 잘 때까지 기다렸다 조용히 집을 나왔다.        


이제 괜찮을 거라고 집에 들어갔지만, 엄마의 한 마디에 아버지의 무시에 다시 무너져 버렸다. 아무리 달아나도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좌절감이 들었다.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달아났고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버지는 지수의 판을 흔들지 못했다. 그가 하는 말도 그의 눈빛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를 자신의 마음속에 들이지 않으려는 그간의 노력이 허무할 정도로 그는 그냥 문밖에 있었다. 이제 그의 인정도 애정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무시도 경멸도 칼이 되지 않았다.      


지수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윤영이었다. 며칠간 핸드폰도 받지 않았고, 메시지에 답도 없었다. 답답했다. 수업 중에도 일을 하다가도 자꾸 핸드폰을 확인했다. 애가 탔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을 복기했다. 그녀를 처음 자신의 오토바이에 태웠고, 자신의 침대로 안고 왔다. 자신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그날이 그녀에게는 별로였는지, 자신이 하룻밤 소모품이었는지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신과의 섹스가 형편없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을 때는 머리를 탈탈 털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윤영의 SNS를 들락날락하며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 때, 선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반갑지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오토바이 사진 몇 장과 사양이 적혀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허세가 가득한 그의 사진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재수는 없었지만, 그가 데려오는 손님들이 꽤 많았다. 후배들이 부탁한 물건들이라고 했지만, 진짜 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선배라고 하면서 은근히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반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최근에 더 연락이 많이 왔는데 들은 소문으로 선재가 혜림에게 작업 중이라고 했다. 혜림이 지수와 친하다는 것을 알고 접근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다른 오토바이도 볼 겸 만나자는 메시지가 이어서 왔다.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가겠다고 답했다. 윤영의 연락만 기다리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학교를 나와서 저녁까지 가게에서 일했다. 지수는 영업시간이 끝나고서야 선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선재는 재건축하는 동네의 빈집이나, 몰래 미성년자를 들여보내 주는 술집, 옥상이 열려있는 상가 같은 곳을 귀신같이 꿰고 있었다. 자신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건물 앞에 오토바이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지수는 우선 선재를 찾았다. 건물 안쪽으로 선재가 대왕처럼 앉아 있었다. 지수가 걸어가자 그가 큰 소리로 지수를 부르며 손짓했다. 다가가 보니 그 옆에 혜림이 있었다.      


- 민지수!      

지수는 답하지 않고 다가갔다. 혜림이 지수를 보고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 선배! 여기!

- 봐달라는 물건이 뭔데?

- 뭐가 그렇게 급해요. 와서 한잔해. 혜림이가 선배 얼마나 기다렸다고! 야 여기 술 더 없어? 가져와!     


지수는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지수가 혜림 옆에 앉자 혜림이 작게 속삭였다.      


- 너 온다고 하도 지랄해서 왔는데 속았네. 아, 저 씨발새끼. 넌 연락은 왜 안 받냐?     


지수가 핸드폰을 꺼내 봤다. 혜림의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가 쌓여있었다. 윤영의 연락에만 목메는 것이 싫어 묵음으로 해놓고 일하는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 꺼놓고 까먹었네. 미안.

- 에이씨. 뭔 일 있는 줄. 병신 같은 새끼 지랄하는 꼴 더는 못 보겠는데.     


선재가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려는 혜림의 옆에 앉았다. 손에는 맥주와 소주가 들려있었다. 지수는 맥주병을 손에 잡았지만 마시지 않았다. 선재는 한동안 혀 꼬부라진 소리로 혜림에게 추태를 부렸다. 그러더니 자리에 서서 자신보다 어린애들에게 대장행세를 하며 소리를 지르고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을 흔들며 자랑해 댔다. 혜림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은 의도와 전혀 다른 효과를 주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한 선재는 마치 자신의 부하들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러면서 자랑이라도 하는 눈빛으로 혜림을 곁눈질했다. 마치 삼류 영화에서나 나오는 깡패 같은 모습이었다.      


- 뭐야. 은호 그 개새끼 어딨냐? 안 불렀어?

- 학원 간다는데요.      


충실한 부하같이 술을 가져다주던 빨간 머리의 남자가 말했다.      


- 미친 중딩 새끼가 내가 부르는데 안 와? 이거 완전 씨발년이네! 야, 이 새끼 당장 오라고 해! 죽여버릴라니까.      

지수가 은호라는 이름에 선재 쪽을 바라봤다. 그의 과한 적의에 당장이라도 그의 졸병들이 은호의 학원으로 쳐들어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수가 선재 쪽을 보고 말했다.      

- 야. 뭘 새로 불러. 우리 이제 가야 해.

- 선배! 이제 왔는데 어딜 가!      


지수가 혜림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혜림이 지수를 잠시 째려보고는 바로 웃으며 선재의 팔을 잡아 앉히며 말했다.      


- 분위기 깨지게 뭔 중딩을 불러. 야 한잔해.     


혜림의 웃음에 선재는 금세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혜림이 주는 술을 연거푸 받아 마시고는 완전히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 은호는 아는 애야?

- 그냥 몇 번 봤어.

- 넌 요새 무슨 일 있냐? 썸 탄다는 소문이 있던데.

- 뭐래.      


지수는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 뭐야 진짜야?

- 난 아니고. 친구 얘긴데. 잘 만나고 헤어졌는데 연락이 없는 건 왜 그런 거냐?

- 잤데?

- 어.

- 졸라 못했나 보지.

- 아니거든.

- 너네, 너. 누가 민지수를 이렇게 만들었냐? 어떤 년이야?

- 어떤 년 아니거든. 함부로 말하지 마.

- 헐. 이거 미친 거 보소. 어떤 쌍년이 민지수를 깠냐?

- 안 까였거든.

- 그냥 나한테 오라니까. 나보다 예뻐?

- 예뻐.

- 에이씨. 망해라.      


혜림이 일어나 엉덩이를 탈탈 털었다.    

  

- 야, 너 때문에 온 거니까 데려다줘.

- 나도 속아서 온 거거든.

- 모르겠고.      


지수가 혜림을 오토바이 뒤에 태웠다. 헬멧을 꺼내 혜림에게 주었다. 혜림이 오토바이 뒤에 앉자마자 지수의 등을 꼭 껴안았다. 지수는 혜림의 서운해하는 마음을 느꼈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졸라 못해서’라는 혜림의 말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윤영이 보고 싶었다.     


혜림을 집 앞에 내려 주고 다시 가게로 들어가려다 멈춰 섰다. 술은 안 마셨고, 잠은 안 왔다. 배달 알바나 할까 하여 핸드폰을 열었다. 아버지로부터 메시지가 와있었다. 부고 문자였다.


다음 이야기

14. 손해 볼 것이 있을까요?

윤영은 영철의 소장을 들고 변호사를 찾아간다. 혹시라도 양육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운 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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