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i Whale Sep 19. 2024

9. 새벽, 지수의 방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나눈 가장 따뜻한 순간

이전 이야기

8. 낯선 번호 아는 목소리

상담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윤영은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은호와의 갈등은 나아지지 않는다. 은호의 전화에서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리지만 은호는 윤영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윤영이 잠에서 깼을 땐, 한밤 중이었다. 핸드폰으로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남겨져 있다. 지수다.

       

ᶪ 뭐해요?

ᶪ 밥 먹었어요?

ᶪ 난 오늘 일해요.

ᶪ 보고 싶어요.      


윤영이 핸드폰 메신저의 화면을 켜자 지수의 문장들에서 1자가 똑똑 떨어져 나갔다. 마지막 대화 칸에 자신의 볼에 왼손으로 하트를 만들고 함박 웃고 있는 지수의 셀카가 전송되었다. 환하게 웃는 지수의 얼굴이 지난 금요일에 차 안에서 봤던 지수의 얼굴에 중복됐다. 윤영이 핸드폰으로 지수의 사진을 보며 피식 웃는데, 그 아이가 예뻤다. 보고 싶었다. 다시 꿈속으로 사라지는 의식 속으로 지수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약 기운에 정신이 몽롱했다. 이내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놀라 윤영이 전화를 받았다. 지수였다.  

   

- 왜케 전화를  받아요. 무슨  있는  아니에요? 끊었어요?     


걱정 어린 지수의 목소리를 들으니 윤영은 괜스레 목이 메었다.      


- 지금 몇 신데 전화야.

- 울어요?

- 아냐.  

- 무슨 일 있어요? 괜찮아요?

- 없어. 괜찮아.  

- 무슨 일 생긴 줄 알았다고요! 또 맞았어요?  

- 아냐. 잤어.

-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요?  진짜 괜찮아요?


지수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너무 진심이어 윤영은 왈칵 눈물이 났다. 괜찮냐는 따뜻한 말을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참으려고 해도 울음이 전화 사이로 삐져나왔다.

 

- 울어요? 무슨 일이에요? 미치겠다고요! 지금 어디예요?!

- 아냐. 진짜 아냐.

- 얼굴만 보고 갈게요. 제발 그렇게 해줘요.   


 당장이라도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윤영이 지수에게  주소를 알려줬다.  때문이라고 지금은  속이라고 되뇌며 그를 불러들인 자신을 단죄하지 않았다. 침대 맡의 ㅇ시계를 올려 봤다. 2 10분이었다. 욕실로  들어가 정신없이 샤워했다. 머리도 말리지 못하고 급하게 옷을 꺼내 입었다. 집안은 깜깜하고 조용했다. 현관엔 은호의 신발이 놓여있었다. 다행히 집에   같았다. 윤영이 낮에 들고나갔던 가방을 그대로 들고 조용히 현관문을 나섰다. 윤영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쳐다보니 2 35분이었다.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발랐다. 윤영의 입술이 빨간 패랭이 꽃잎처럼 또렷하다.     


윤영이 아파트 단지 내 입구 쪽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새벽녘의 한기가 윤영의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윤영의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직 지수는 보이지 않았다. 윤영은 주변을 다시 두리번거렸다. 그때, 길 건너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깜박였다. 윤영은 눈이 부셔 손가락으로 눈을 가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지수가 그녀 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헬멧을 벗은 지수가 윤영이 괜찮은지 눈으로 확인하고는 와락 그녀를 껴안으며 작게 소리쳤다.


- 걱정했다고요! 미치는 줄 알았다고요. 진짜 괜찮아요?


윤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가 윤영에게 자신의 재킷을 걸쳐주고 오토바이 시트를 열어 헬멧을 꺼내 씌워주었다. 윤영이 지수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지수가 윤영의 손을 자신의 허리에 꼭 둘러주었다. 윤영은 지수의 등에 자신의 모두를 기댔다.


지수의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달렸다. 지수의 오토바이가 D-Motors 앞에 멈춰 섰다.      


- 아는 형네 가게예요. 여기서 일하면서 잠도 자고 그래요. 발밑 조심해요.     


문을 열자 기름 냄새와 먼지가 윤영의 숨 속으로 쑥 들어왔다. 가게 안은 작은 자동차 정비소 하나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지수는 미로같이 놓인 공구들을 익숙하게 피해 안쪽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불이 켜지자 안은 좀 전까지 치열하게 전투 중인 전쟁터처럼 온갖 공구와 부품들로 난잡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중앙에는 바디 없이 헐벗은 오토바이 몇 대가 리프트 위에 세워져 있고 가게 한편은 출고를 준비 중인 반짝이는 오토바이 서너 대가 칼같이 주차되어 있었다. 벽면 곳곳에 설치된 스페이스 월에는 이름 모를 공구들이 촘촘히 걸려 있었다. 천정까지 설치된 철제 선반에는 온갖 부품과 공구, 다양한 종류의 타이어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자세히 보니 왼편을 넓게 정비실로 쓰고, 오른편에는 전시나 판매를 하는 것 같았다. 오른편 입구 쪽으로 계산대와 기름때가 묻은 소파와 사각으로 된 나무 테이블이 있었다. 앞이 통유리로 된 매장은 어디에 있어도 밖에서 훤히 내다보였다. 안쪽 코너에 STAFF 팻말이 붙은 문이 보였다. 지수가 그 문을 열고 윤영을 안으로 데려갔다. 안은 매장과 달리 사방이 막혀있어 불을 켜지 않으면 완전히 캄캄했다. 고시원 같은 방에는 가구 몇 가지와 욕실이 붙어있었다. 가로로 긴 수납장과 천장까지 닿을 듯한 사물함 여러 개가 한 벽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옆 벽면에 길게 소파 겸 침대가 펼쳐져 있었다. 방금 지수가 누워 있다가 나온 것 같았다. 수납장 위에는 지수의 것으로 보이는 책과 핸드폰, 충전기, 헤드폰, 아령 같은 것들이 있었다. 직원들이 옷도 갈아입고 샤워도 할 수 있는 휴게실 같았다.      


지수가 재빨리 침대를 정리하더니 깨끗한 담요와 수건을 윤영에게 주며 말했다.


- 여기서 잠깐 쉬고 있어요.

  

정신없이 달려올 땐 느끼지 못했던 한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벽에 붙은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봤다. 젖은 머리에 헬멧을 써서 머리칼이 채 마르지 않아 더 추웠다. 윤영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칼을 꾹꾹 눌러 말렸다. 근래 제대로 먹지도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살도 확 빠진 것 같았다. 윤영의 파리한 얼굴에 입술만 도드라지게 붉었다. 어쩌다 여기에 와 있는지 자신의 발등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이 새벽에 다시 집에 가려고 생각을 해봐도 여기가 어느 방향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 지수가 커다란 머그컵에 코코아 두 잔을 타 가지고 들어왔다.      


- 고마워.

- 안 추워요?


윤영이 담요를 끌어안으며 고개를 저었다.


- 여기서 사는 거야?

- 원래 기숙사에 있는데, 작년부터 나와 지내요. 여기서 일도 하고 잠도 자고.   

- 부모님  계셔?

- 아버진 지방에 계세요. 있다고 해도 별로 다르지 않았겠지만. 서울 집에 엄마가 있는데 서로 알아요. 우린 진짜 가족 아닌 거.   

- 슬프네. 친엄만?

- 저 한 살 때 버리고 갔대요. 그다음은 잘 몰라요. 공공연한 비밀 같은 거죠. 이제 와서 찾고 싶은 맘도 없고. 전 지금 엄마가 친엄마인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때도 느낌은 있었어요. 그런 기분 알아요? 같은 집에 있어도 저만 밖에 있는 것  같은 거요. 결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마법세계의 비운의 왕자 뭐 그런 거?  


그 기분을 윤영이 모를리 없었다. 윤영 자신도 가족에게 한 번도 정말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 그래서 나온 거야?

-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살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쫓겨났고요.  

- 외로웠겠네…….

- 뭐 인생 어차피 혼자잖아요.


지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다시 장난스럽게 웃는다. 지수가 씨익 웃으면 매서웠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가 귀엽다.


- 이제 내가 궁금해요?

- 부모님 원망 안 해?

- 글쎄요. 이젠 뭐 그냥 각자 인생 사는 거죠. 당신은요?

- 알면 도망갈걸.

- 남친 있어요? 남편은 없는 것 같고.

- 어느 쪽인 거 같니?

- 아무 쪽도 아니면 좋죠. 그렇다 해도 상관없고.

- 각자 사는 거 그건 어떻게 하는 거니?

- 그걸 어떻게 해요? 그냥 하는 거지.     


윤영은 지수를 다시 본다. 단호하고 강단 있는 얼굴이다. 하지만 달콤한 포도향이 나는 아이.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마를 살짝 덮는 머리카락. 자세히 보니 짧게 깎은 손톱 밑에 까맣게 기름때가 껴있다. 윤영이 은호를 나았을 때가 딱 지금 지수의 나이였다. 윤영은 잠깐 은호의 아빠가 지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지수였다면 자신과 아이를 떠나지 않았을까? 한동안 생각해 본 적 없던 은호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떠올랐다.


- 제가 좀 전에 작업하던 오토바이 보여줄까요?      


지수가 윤영의 손을 잡아끌고 다시 작업장으로 걸어갔다. 어느 때보다 목소리에 신이 났다. 둘은 튜닝 중인 오토바이들이 놓인 곳으로 나갔다. 윤영이 보기엔 뼈대만 있는 기계 덩어리 같았다. 흔히 보는 배달용 오토바이보다 굵은 타이어에는 꽤 여성스러운 패턴의 홈이 파여 있었다. 엔진 부위에 복잡한 기계장치와 튜브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 제가 일주일 넘게 공들이고 있는 거예요. 이제 무광 블랙으로 바디 도색하고 프레임이랑 머플러만 본래 색으로  거예요. 타이어가 진짜 멋있죠? 이렇게 보면 뒤태가 완전 예술이에요.      


윤영은 심드렁하다. 지수가 윤영을 번쩍 들어 덜 조립된 오토바이 시트에 앉혔다. 눈이 동그래진 윤영의 입에 쪽 하고 뽀뽀를 한다. 그리곤 윤영의 등 뒤에 앉아 몸을 바싹 밀착하고 윤영의 오른손을 오토바이 스로틀 그립에 놓고 자신의 손을 그 위에 포갰다.      


- 시동 켜고 이렇게 그립을 잡고 돌리면 앞으로 나가요.       


윤영의 목으로, 귓가로 지수의 목소리가 간지럽게 넘어왔다. 윤영의 몸이 긴장으로 웅크려 들고 그 안으로 전기가 찌릿하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지수의 혀가 윤영의 목을 파고들었다. 윤영의 목에 지수가 마시던 달큼한 코코아가 묻어났다. 오토바이 스크린 너머로 가로수가 보였다. 윤영의 시야에서 직각의 방향으로 한 두 대의 차가 엄청난 속도로 지나갔다. 까만 어둠에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밝았다. 길 건너로 어릿어릿 사람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윤영이 놀라서 몸을 빼내려 하자 지수가 윤영의 허리를 꽉 껴안고 놓지 않았다. 윤영이 몸을 세워 지수를 밀어내려 했지만, 지수는 더 세게 윤영을 껴안았다. 흥분한 둘이 한 데 얽혀 움직이자 리프트에 고정되어 있던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한밤의 정적이 와장창 깨어졌다. 지수가 같이 넘어지는 윤영을 재빨리 끌어안았다. 그리곤 그녀를 안고 직원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지수는 윤영을 선반 위에 내려놓고 침대에 엉클어진 담요와 이불을 겹겹이 깔았다. 윤영이 지수의 침대로 다가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옷을 벗겼다. 밖에서는 드문드문 차 소리가 들렸다. 휴게실에서 나는 눅진한 먼지와 기름 냄새와 달리 이불에서는 상큼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지수가 윤영을 뒤에서 껴안고 목에 키스하며 쌕쌕 숨을 몰아쉬었다. 윤영의 뒷모습에 지수는 정신이 아찔했다. 지수는 윤영의 등과 허리에 입을 맞췄다. 윤영의 허리에는 보라색 멍이 넓게 퍼져있었다. 지수는 그런 윤영의 허리를 자신의 혀로 천천히 핥았다. 지수는 윤영의 등 뒤에 바싹 밀착된 몸을 일으켜 윤영의 골반을 당겨 자신의 성기를 삽입했다. 윤영은 지수를 살짝살짝 밀어냈지만, 그것이 지수를 더욱 끌어당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윤영은 파도에 휩쓸려 출렁이는 것 같았다. 발이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듯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했다. 동그란 벽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와 철제로 된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지수와 윤영의 몸이 맞부딪치는 소리에 중복되어 불협화음을 만들었다. 윤영은 아랫배 깊숙이 무엇엔가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거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랐을 때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지수가 윤영의 몸을 부술 것처럼 달려들었다. 그때, 윤영이 자신의 몸을 지수로부터 뺐다.      


- 흐억!

- 안돼.      


지수가 몸을 숙인 채 자신의 성기를 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윤영은 자신 앞에서 웅크려 사정하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의 몸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의 풋풋함이 있었다. 흥분하고 발끈하고 환호하고 실망하는 감정의 조각들이 그대로 보였다. 다시 지수의 몸을 일으키고 침대에 눕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윤영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옷을 집어 입었다.

     

윤영은 침대에 기대앉았다. 지수가 식어버린 코코아를 들고 윤영의 옆으로 와 앉았다.     


- 진짜 너무해요.

- 다음부턴 콘돔 껴.

- 넵!

-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 나이에 애 아빠 되고 싶지 않음.

- 당신뿐인데요.

- 고등학생이 클럽 다니면서 그런 말이 나오나?

- 어, 아닌데.

- 그래. 그렇다고 해두자.

- 진짜 아닌데. 쪽팔려서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저 진짜 몰라요?

- 내가 널 알아?     


윤영의 기억 속에는 지수가 없었다. 아무리 바빴어도 이렇게 눈에 띄는 남자를 못 알아봤을 리가 없을 텐데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기억나지 않았다.    

    

- 저 혜림이 때문에 거기 미용실 간 적 있어요. 클럽 간 건 일 때문에 간 거예요. 클럽 다니고 맨날 놀고 그런 애 아니거든요. 시끄럽고 사람 몸 닿는 거 싫어서 거의 안 가요. 저 여자랑 맨살 닿으면 아파요.

- 네가?      

윤영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지수를 쳐다봤다.      


- 진짜예요. 그런데 당신만 괜찮아요. 완전 신기했어요.        

지수가 정말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윤영을 바라본다.      


- 언제부터 그래?

- 몰라요. 엄마 때문인가? 엄마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제 손을 잡아준 적이 없어요. 우연히 손끝이라도 닿으면 끔찍해했어요. 내가 무슨 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그 느낌 진짜 더러워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여자랑 맨살이 닿으면 타는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병원도 가보고 했는데 몸엔 이상이 없대요.

- 힘들었겠네.

- 그땐?      


윤영은 어머니에게 학대받은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지수를 슬프게 쳐다봤다. 지수가 그런 윤영의 입술에  하고 뽀뽀했다. 지수의 얼굴을 윤영이 손으로 감싸고  깊게 키스했다. 지수가 윤영의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다가오려는 지수를 살짝 밀고 윤영이 널브러진 이불을 정리하다 이불에 얼굴을 가져가 지수의 냄새를 맡는다.


- 냄새나요?

- 어.

- 진짜요? 어제 빨래방에서 담요랑 이불 다 빨았는데 진짜 나요?

- 아냐. 너 냄새 나. 애기냄새.

- 저 애기 아니거든요. 봤을 텐데.

- 불편하진 않아? 겨울에 안 추워?

- 괜찮아요. 지낼만해요.

- 그래도 계속 이렇게 있을 순 없잖아. 집에...


아직 어린 나이인데 직원 휴게실 지내는 지수가 안쓰럽다. 집에 들어가는  어떻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말할  없었다. 자신도 엄마와 새아빠가 있는 집에  번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 내년에 대학 가면 돈 더 벌어서 나갈 거예요. 해외로 가도 좋고요. 영국이나 캐나다?

- 대단하네. 나 만나서 좋을 일 없어. 너 어울리는 사람 만나.       


지수가 윤영을 꼭 껴안는다. 윤영은 그런 지수가 따뜻하다.       


- 당신도 분명 날 좋아해요. 몸이 말해줘요. 당신 몸이 닿으면 꼭 내 몸속으로 당신이 다 들어오는 것 같아요. 저 진짜 여자랑 스치는 것도 싫어하거든요. 근데 내 몸이 당신한테는 언제나 환영이라고 말하는 거 같아요. 어서 와 이렇게요. 미친 소리 같겠지만 사실이에요.  

    

애라고 생각한 지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 들키기라도 한 것 같아 윤영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윤영이 지수를 다시 밀어냈다.     


- 까분다.

- 괜찮아요. 그래도 내가 더 좋아해요.      


지수가 윤영의 손을 잡았다. 싱긋 웃는 지수가 예쁘다. 윤영도 더 이상 지수를 밀어내지 않았다.      


윤영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지수의 제안을 끝끝내 거절했다. 그녀는 고등학생 남자친구에게 집까지 바래달라고 할 만큼 뻔뻔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였다. 혹시라도 지수와 함께 가다 집 근처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했다. 윤영 자신보다 은호에게 어떤 얘기가 들어갈까 무서웠다. 아침 공기가 이제 꽤 차가웠다. 바쁘게 일하러 가는 사람들 속에서 윤영이 혼자 걸어간다.


다음 이야기

10. 조각난 아버지의 얼굴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연락에 찾아간 연구실에서 낯선 여자를 만난다. 그녀 앞의 아버지는 지금까지 본적 없는 얼굴로 지수를 당황시킨다.

이전 08화 8. 낯선 번호 아는 목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